“주한미군 발령이 취소되었습니다.” 미국 공군에서 근무하던 한 한국계 장교는 지난해 이 같은 인사 명령을 듣고 깜짝 놀랐다.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장교였던 그는 주한미군 발령 직후 공군에서 ‘미국에서 태어날 당시 부모 국적’을 물어본 게 생각났다. 알고 보니 부모가 미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이라고 답한 게 주한미군 발령의 취소 이유였다. 그제야 자신이 한국 국적법에 따라 한국과 미국 복수국적자임을 알게 됐다.
이 장교는 한국 입국 시 한국 병역의무 기피자로 체포될 수 있다. 잠재적인 이중간첩으로 간주될 수 있는 데다 한미 간 법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발령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적법의 이른바 ‘선천적 복수국적’이 한국계의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미국 내에서 비등하고 있다.
현 국적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속지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미 복수국적자가 된다.
문제는 이 아이가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38세까지 한국 국적을 사실상 포기하지 못할 만큼 매우 어렵게 해두었다는 점이다. 18세까지 국적 이탈을 못 하면 직업 선택상 복수국적으로 인한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 공직자가 복수국적을 이유로 보직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당한 뒤 이 같은 피해를 기반으로 한국 국적 포기를 신청할 수 있다. 한국 국적 포기를 통해 달성하려는 미 공직이라는 꿈에 상처를 입은 후인 것이다.
이에 지난달 뉴욕주, 뉴저지주, 코네티컷주 등 3개 주 한인회 대표는 국적법 개정을 촉구하는 대통령 청원서에 서명했다. 이미 미국에서 자리 잡은 한인 2세들이 군인을 포함한 공직이나 정계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아예 퇴출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게 탄원서의 요지였다.
사실 선천적 복수국적 조항은 이런 문제로 인해 2020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고 2022년 ‘예외적 국적 이탈 허가제’가 시행됐으나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며 더 까다로워졌다는 평가다.
헌법 불합치를 이끈 전종준 변호사는 “이제 미국 정부도 한국 국적법을 알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한인 2세들의 미 공직과 정계 진출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에서 한국의 힘은 한국 자체 국력은 물론 미국 내 한국 출신의 힘에서도 나오기 때문이다.
테드 크루즈는 2013년 미 연방 상원의원 당선 직후 언론을 통해 캐나다와 미국 복수국적자임이 드러나자 바로 캐나다 국적을 포기했다. 만일 한국 출신이라면 현행 국적법으로는 국적 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우리 국적법이 원정출산과 병역기피를 막으려는 원래 취지는 살리되 애꿎은 재외동포 차세대 미래는 막지 않도록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
[윤원섭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