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종준 (1) 수없이 실패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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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따뜻한 겨울햇살이 눈부신 늦은 오후다. “오늘 약속은 끝났습니다”라는 리셉셔니스트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려왔다. 벌써 6시가 넘었다. 예약 스케줄에 가득 적힌 의뢰인들의 이름들, 파일 캐비닛에 수북이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질주해 왔던가를 생각했다. 내겐 한국 최초 미 이민법 저자, 최초 미 혼혈인 법안 제출, 최초 탈북자 미 영주권 획득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난 ‘최초’가 ‘최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고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최선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등’해서 서러운 사람들이라도 ‘최선을 다할 때 남이 하지 않은 최초도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인생을 평탄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등만 한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시험마다 다 통과해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까지 온 길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실패의 열매이기도 하다. 실패는 도전을 알게 했고, 그 도전은 내게 희망을 배우게 했으며, 그 희망은 좌절로 혹은 기적으로 응답됐다. 정확한 공식이 없는 인생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워 나가는 일 뿐이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 하셨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간섭하심이 부족한 나를 숨기시고 이끌어 주신 것이다. 내가 잘한 게 딱 하나 있다면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 열정의 원동력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나처럼 평범하게 2등만 하던 사람도 열심히 도전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부끄러움이 자랑이 되고, 나의 약함이 강함이 되며, 나의 나눔이 곧 받음이 되는 것을 깨달은 순간, 비로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계획 안에 있었다.

내가 변호사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집안 어른 중에 변호사이신 전정구 아저씨가 계시다. 서울상대를 나오시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두 개를 패스하셨다. 국회의원을 지내신 원로 세법변호사였다. 그분이 식구라는 이유만으로 든든해하셨던 어른들의 태도를 보면서 나도 아저씨처럼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아버지를 졸라 종로서점에 갔다. 법률서적을 읽고 미리 공부하고 싶다며 책을 사달라고 하니까 아버지는 공부하겠다는 말만 듣고도 기특하게 생각하시며 책을 사주셨다. 육법전서 중에서 헌법 민법 형법에 관한 책을 샀다. 책을 사던 날 난 이미 변호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대를 가서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너무 멀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반드시 법대를 간 후에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빨리 변호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을 다 무시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를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가르쳐주는 선생도 없이 육법전서를 읽으며 혼자 이해하는 아주 위험한 공부를 했다. 나의 오만한 생각과 행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 순서와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 얼마나 큰 수업료를 치르게 했는지 모른다. 계획 없는 행동들은 실패의 서곡에 불과했다.

약력=1958년 서울 생, 단국대 법대, 네브라스카 주립대학 정치학 석사(M.A.), 산타클라라대학 법학박사(J.D.), 아메리칸대학 국제법석사(LL.M.), 현 워싱턴 로펌 대표변호사

정리=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635878&code=23111513&sid1=f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