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종준 (11·끝)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포기를 몰랐다

[역경의 열매] 전종준 (11·끝)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포기를 몰랐다 기사의 사진

워싱턴에서 약 20년간 이민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클라이언트들이 이민문제뿐 아니라 다른 문제로도 고통받는 것을 많이 본다. 그들은 “전 변호사님이 제 일을 다 알아서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자주 말한다. 미국 변호사들은 당장 언어 소통의 문제가 있어 통역을 대동해야 하니, 일 처리 시간과 경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민문제만 갖고도 일이 많았던 나는 계속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한번은 내 클라이언트가 다른 법적 문제가 생겨 추방을 당할 수도 있어 다른 변호사와 연결이 시급한데 그 변호사는 마침 휴가 중이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태울 때 머릿속에서 “로펌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이민 케이스에만 열중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클라이언트에게 이민 외에 또 다른 법률문제가 생겨 다른 법률사무실과 일하게 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을 했다. “로펌을 열려고 몇몇 변호사들을 만나 보았는데, 만나는 변호사들마다 반대를 하네요. 그들은 로펌의 어려운 이야기만 해주면서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편하고 돈도 더 버는 거라며 극구 말리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듣더니 어차피 교포들을 위해 시작하려 하고 그들의 아픔과 힘든 것을 나누려 한다면 쉬운 일만 일어나고, 좋은 일만 일어나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 꼭 로펌을 해야 한다면 전 변호사가 먼저 그 장을 열어 보라”고 말하면서 더 기도해 보라고 했다.

그날부터 열심히 기도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나에게 좌절과 실망 속에서도 응답하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셨던 주님께 남은 길을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누군가 로펌을 열어야 한다면 그 장을 전 변호사가 열어 보라’고 한 지인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이것이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들을 통해 응답하시는 걸 난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 로펌을 통해 약한 자를 돕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자.’ 변호사가 되어 편하게 정착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받은 은혜를 나눠 주라”며 내 등을 떠미셨다.

‘워싱턴 로펌’을 열고 보니 예상했던 대로 민사, 형사 그리고 이혼 문제가 많았다.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었다면 부부가 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만 더 사랑을 보여 주었으면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희생했으면 모두가 편안했을 텐데 후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로펌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내가 이제 비로소 교포들의 아픈 곳을 만져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로서 경륜이 오래될수록 난 사건의 판단을 함부로 내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나의 법조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예견하지 못한 결과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케이스를 진행하다 보면 인간의 법으로 절대 불가능한 데도 어떤 때는 통과되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이 놀라기도 한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법이 과연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예상하지 못한 것을 예상하라’가 내 변호사 생활의 모토이다. 처음에는 잘못될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세운 모토였다. 그러나 깨달음이 깊어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예상하라’에는 실수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축복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젠 예상하지 못한 축복이 항상 함께할 것을 믿으면서 미리 감사하고 미리 기뻐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에 반대말은 없다’는 것이다. 불행은 행복의 시작이었고 절망의 끝은 희망의 시작이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거라는 걸 알았다. 나 역시 실패하지 않았으면 성공을 몰랐을 것이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감사를 몰랐을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는 내 인생 여정이 나를 설레게 한다.

정리=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686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