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종준 (10) 탈북 여성이 ‘하나님 간증’ 온 몸에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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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혼혈인 운동의 장벽을 느끼고 미국에서 잊혀진 아이들을 부각시키기로 했다. 레인 에반스 의원에게 ‘혼혈인 자동시민권 부여 법안’을 상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미국에서 이미 영주권을 가진 혼혈인은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차후에 제2의 법안을 통해 한국에 남아 있는 혼혈인들에게 미국에 올 수 있는 법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4월, 에반스 의원은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5개국 혼혈인 자동시민권 부여 법안을 하원에 상정했다. 2006년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에반스 의원의 법률고문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회 초청을 받아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에반스 의원에겐 장거리 여행이 무리였지만 그는 법안통과 경과보고와 한·미 우호간담회 등을 위해 기꺼이 방문해주었다. 그러나 혼혈인 법안은 한국이나 미국 내에서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난 약 1주일 뒤 슈퍼볼의 MVP 하인스 워드가 혼혈인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후 에반스 의원은 지병인 파킨슨병으로 은퇴했고 난 2007년 3월, 마이클 미셔드 하원 의원을 통해 사장돼 있던 혼혈인 법안을 미 하원에 재상정했다. 그러나 의회의 냉담한 반응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난 지금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혼혈인 법안을 위해 상·하원 의원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띄우고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 또 하인스 워드가 혼혈인 법안을 지지해 주길 기도해 본다.

인권운동은 단시간에 결과를 얻기 어렵다. 내가 하는 작은 인권운동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로 시작하는 아주 극히 감성적인 면이 많다. 비자 거부 때도 그랬고 혼혈인 문제도 그랬다. 나의 욱하는 감정이 내 목줄기를 타고 올라오면 그때는 아무도 못 말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인으로부터 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들어온 탈북자의 영주권 취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며칠 후 초췌하고 마른 몸매의 30대 초반 여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난 일상적인 질문을 하면서 상담을 진행할지 말지 고민했다. 일단 그녀는 돈이 하나도 없어 변호사비는 고사하고 영주권 취득에 따른 접수비며 수속비까지 내주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목숨을 건 탈북 과정을 이야기하는 중 갑자기 간증을 했다. 그녀는 지난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맥을 못 추는 단어인 ‘하나님’이 그녀 입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이 여자를 도우라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탈북자는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적 곤란 때문에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다. 정치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이유의 난민은 미국 이미법상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2004년 10월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의해 경제적 이유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에게도 난민 자격을 부여해 미국 입국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나는 이 북한인권법에 의거해 그녀가 미국에 난민 지위로 입국한 1년 후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탈북자였던 김미자씨는 1년 만인 2008년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첫 영주권 취득자가 됐다.

당시 한국 언론에선 탈북자 첫 영주권 발급에 대해 대서특필했고 전 세계 미디어가 보도했다. 더 놀라운 사건은 보도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인권법이 극적으로 4년 더 연장된 것이다. 북한 인권법은 2004년 10월부터 2008년 9월 30일까지 유효한 한시 인권법안이었다. 2008년 9월 초만 해도 북한인권법의 연장이 어려울 것이란 추측이 만발했다. 그러나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잊혀진 탈북자의 존재가 다시 부각되었기에 북한인권법 연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든 것은 우리의 뜻이나 생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정리=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677291&code=2311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