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것이 살리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가 가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어머님 댁 앞집 밤나무에는 밤 송이가 주렁주렁… 그 밤알이 떨어지면 앞집 아이는 얼른 밤송이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집 앞에 놓고 간다. 부모님이 좋아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난 그 바구니를 보면 마트로 달려가 한국 과자를 듬뿍 사다가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처음에는 신기해 하더니 너무 좋다고 난리다.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 눈이 와서 내가 먼저 우리집을 치우고 가보면 어느새 동네 사람 누군가가 눈 치우기를 시작하고 있다. 너무 감사해서 친절에 보답할 그 무엇을 찾느라 난 또 바빠진다. 참 정이 많은 동네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만큼 풍성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감사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약 25년 만에 지인을 만났다. 여의사였던 지인은 이젠 은퇴하고 지내신다고 한다. 참으로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인은 오래간만에 본 나를 보자마자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이 왜 감사하는지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답례했다.

사연인 즉, 25년 전에 나에게 딸의 진학에 대해 상담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는 딸이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한인 2세 여성 중에 변호사가 많지 않으니 로스쿨을 한번 도전해 보라고 딸에게 권유했다고 한다. 내 말을 듣고 딸은 로스쿨에 입학했으나 일년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중도 하차하려고 했을 때 또 다시 나의 자문을 요청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원래 로스쿨에서의 첫 일년이 제일 힘든데 그 고비가 지났으니 앞으로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내 자문대로 딸은 무사히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금은 결혼하여 두 아이가 있고 현재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감사한다는 것이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내가 그런 자문을 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보통 준 것은 기억 못하는데 받은 것은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가!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나눈 것뿐이었는데 누군가는 그게 인생의 진로가 되었다고 감사하게 생각한 것이다.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지인 덕분에 그 날은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서서히 먹어서인지, 요즈음은 감사한 일이 더 많아졌다.

아침마다 말씀을 읽고 큐티를 하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To share is to save” 즉, “나누는 것은 살리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남과 나눌 때 남을 살리고 구제하게 된다. 굳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의 고통이나 어려움 혹은 슬픔 등을 나누는 것 또한 남을 살리는 것이다.

그 글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늘상 생각하고 내가 책에도 쓴 글인데 말이다.
맞다. 나누면 남이 살고 내가 산다. 물질로도 나눌 수 있고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그저 내 생각을 나누었지만 남을 생각하며 나눌 때 상대는 감사를 느끼고, 그 감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준 것은 기억하고, 받은 것은 기억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삶은 감사를 모르는 삶이고, 대접받기를 바라는 삶이다. 꼭 먼저 받아야 감사하고, 감사해야 나누는 수동적인 감사보다는 먼저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고 감사를 베푸는 능동적인 감사가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감사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감사가 나눔을 낳고, 나눔이 또 다른 감사를 낳는다.

비록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 같이 보여도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감사한 사람들의 행렬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내 머리속을 지나갈 것이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배우자에게 감사하고, 자녀에게 감사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 인해 도움과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하는 감사의 계절이 되었으면 싶다. 감사가 넘칠 때, 우리의 삶 또한 풍성해질 것을 믿는다.

<전종준 변호사, VA>

<출처: http://dc.koreatimes.com/article/20231016/1485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