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가족까지 울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

▶ NY 백정순씨, 남편 호국원에 안장위해 방한 준비중

▶ 미국 태생 36세 아들 병역기피자 돼 입국 어려워

전종준 변호사가 뉴욕의 국가유공자 부인인 백정순씨와 통화하고 있다.

미주 한인 2세들의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로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를 국립 괴산 호국원에 안장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뉴욕에 거주 중인 백정순씨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남편 백두현씨를 고인의 유지에 따라 아들과 함께 국립 괴산 호국원 안장을 위해 한국 방문을 준비하다. 뉴욕 총영사관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선친의 유해를 모시고 갈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라서 홍준표법에 의해 병역기피자가 되어 한국에 갈 수 없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1986년 2월 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났을 당시 백두현씨와 백정순씨가 영주권자였기에 아들은 한국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는데도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뉴욕에서 UN직원으로 근무 중인 아들이 자신은 한국행을 포기할 테니 아버지 안장을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만 다녀오라고 했지만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마지막 배웅길에 아들이 참석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가 탄 백정순씨가 뉴욕 총영사관과 워싱턴 주미대사관에 국가유공자인 남편을 한국에 안장시키려 하는데 아들이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공관에서는 “어쩌면 미국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등의 애매한 대답만 되풀이했다. 백씨는 “속시원하게 ‘된다, 안된다’라는 말이라도 해주지 애매한 답으로 가슴을 찢어놓는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악법이 있느냐”며 울먹였다.

한국에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부모의 혼인신고-부모의 국적상실 신고-자녀의 출생신고가 선행돼야 한다. 이후에 자녀의 국적이탈을 시작할 수 있으나 약 1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백씨 아들의 경우 작년 10월 국회에서 통과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직 진출을 못한 불이익을 증명해야 하기에 국적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백두현씨는 월남전 백마부대로 참전(1967-1968년)해 2000년 2월에 참전용사 증서/고엽제 피해자임을 인정받고 2011년 11월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미국에는 1984년 11월 뉴욕으로 이민 왔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개정을 위해 10여년째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는 “부계 혈통주의에 의해 출생시 아버지가 영주권자였으면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나 2005년 홍준표법이 통과되면서 한국에 호적에 없는 남성들에게도 국적이탈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홍준표법이 통과될 때 1983년 5월 25일로 소급 적용되어 1986년생 아들의 경우는 국적이탈 신고에 대한 통보도 받지 못했고 또한 국적이탈 기회를 부여하는 경과 규정도 없이 부당하게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적인 법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나 국회는 지난 18년 동안의 피해 사례를 마치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은 헌법 2조 2항의 재외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포기한 직무 유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선천적 복수국적 개정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 다녀오기도 한 전 변호사는 “미국 등 외국에서 태어나 17년 이상 외국에 거주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로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출생 시까지 소급해 자동으로 국적이 상실되는 ‘국적 자동 상실제’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