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동안 내가 느끼고 안타깝게 생각했던 일들을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사연은 이렇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는 A씨는 불과 이틀 전에 지인으로 부터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전화를 받고 너무 기가 막혀서 지금까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했다. 1999년 10월 생인 아들이 이번 법안에 해당된다고 한다. A씨의 미국인 남편은 미군 육군장교로 근무하다 몇 년 전 사망했는데, 평소 아버지를 존경하던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주니어 학군 사관후보생(J ROTC)’에 등록했다. 현재 대학생인 아들은 여전히 ‘ROTC’에 있으면서 Top 3에 들 정도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앞으로 미군 장교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어머니는 확고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아들이 매우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아들이 개정된 한국 국적법의 적용을 받아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로 인해 앞으로 미군 장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불이익을 받거나 심지어 애초에 장교로 임관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도 안 되고, 어찌해야 할 바도 몰라 애틀란타 영사관에 문의를 했다. 영사관에서는 그동안 개정법에 대한 홍보가 있어 왔다고 했으나, 본인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더우기 돌아온 답변은, “그나마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다, 전공을 바꿀 시간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국적은 부모의 혈통을 따라야 하니 별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영사관 직원이 할 소리입니까? 제 아들은 장교로서의 삶이 아닌 어떤 것도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아이의 장래를 왜 살지도 않는 나라의 법 때문에 바꿔야 합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어머니 나라는 어머니의 나라이고, 이 아이의 나라는 현재 미국입니다.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아이의 장래에 적어도 불이익이 돌아가게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염려와 우리 모두의 걱정이 고스란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중국적의 꼬리표’ 때문에…
한편, 최근 조윤제 주미 대사는 워싱턴 동포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신년간담회에서 “우리 차세대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한인들이 미국 선거 시 투표에도 적극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행 한국 국적법의 적용을 받는 차세대들이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즉, 현실은 조 대사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된 상황의 소식을 영국, 프랑스, 호주, 칠레, 일본 등으로 부터 반복해서 보다 보면, 과연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한인 2세의 세계 각국 및 미국에서의 공직진출을 도울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의 잘못된 선천적 국적법을 정당화시켜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번 제 4차 헌법소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공직 진출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하며 공직의 범위를 아주 좁게 해석하여 관련 국적법 조항에 위헌의 소지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공직 진출은 사관학교, 군인, 연방정부 공무원, 경찰, CIA, FBI, 그리고 정치인 등을 망라하는 매우 광범위한 것이므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하루 속히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속 진행 중인 제 5차 헌법소원에 대한 긍정적 결정이 내려져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국적법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된다면, 조 대사가 말씀한대로 재미 동포사회가 “한국 외교 활동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종준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