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 한인2세 엘리아나 민지 리씨, 헌법소원 청구
▶ 병역의무 없는 女 ‘국적자동상실제 폐지’로 불이익
지난 18일 한국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킨 6차 ‘선천적 복수국적 헌법소원’ 설명 기자회견에서 전종준 변호사(오른쪽)가 접수서류를 보여준 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임국희 변호사, 가운데는 청구인인 엘리아나 민지 리 씨.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한인 2세인 엘리아나 민지 리(24) 씨는 영주권자 아버지와 시민권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대부분의 한인 2세들이 그렇듯 한국에 출생신고도 안 된 리씨는 자신의 국적은 미국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국적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자신의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리 씨는 지난해 10월 미 공군 입대시험에 응시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 신원조회 과정에서 복수국적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도 한국 국적법상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됐다. 결국 한국 국적이탈 신고를 위해 13년 전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국적이탈에 필요한 출생신고조차 못했다.
게다가 국적이탈 신고 처리 기간이 1년 6개월이나 걸린다는 소식에 공군 입대 전 국적이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엄격한 신원조회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허위답변한 리씨는 불안감과 양심의 가책 끝에 결국 올해 1월 입대를 포기했다.
현행 한국 국적법 조항이 선천적 복수국적자 여성의 미 공군 입대를 부당하게 좌절시켜 헌법에 보장된 국적이탈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됐다.
엘리아나 리씨를 청구인으로 한 이번 헌법소원은 지난해 9월 선천적 복수국적자 남성에 대한 국적법 조항 ‘헌법 불합치’ 판결을 이끈 워싱턴 로펌의 전종준 대표 변호사와 임국희 변호사가 냈다.
과거에는 해외 태생 여성은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한 한국국적이 자동 상실됐지만, 2010년 개정 국적법에 따라 자동상실제도가 폐지됐다.
애난데일에 있는 한강 식당에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자 여성이 이젠 한국에 출생신고 없이는 국적이탈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불이익을 받게 됐다”며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에게까지 출생신고를 강요하고 18개월이란 처리 기간을 요구해 부모 이혼이나 그중 한 명이 사망해 출생신고서에 서명을 못할 경우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속히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국적 자동상실제를 부활해 인권침해요소를 해소하고, 제 2의 카멀라 해리스 같은 한인 여성 부통령이 탄생할 수 있게 한인 2세의 정계나 공직 진출을 장려하는 개정법을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8년간 근무한 후 2017년 도미해 매사추세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워싱턴 로펌에 합류해 이번 헌법소원을 접수시킨 임국희 변호사는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 와서 청구인을 포함한 한인 2세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게 됐다. 현행법이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한인 2세들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말하게 만드는 자체가 위헌이고 기본권 침해”라고 설명했다.
청구인의 어머니인 아이린 리씨는 “미국에 40년 넘게 살았는데 선천적 복수국적법으로 딸아이가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을 보며 너무 억울했다. 또 엘리아나 밑의 남동생도 18세 이전에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모르고 있다가 병역기피 조항에 걸려 한국에 가지도 못하게 됐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미주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에 해당되는 한인 2세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