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못해 먹겠다

여봐라, 이리 오너라.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임금님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었다. 조선왕조 500년과 군사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다져진 제왕적 대통령 앞에서 법전은 단지 종이 호랑이 일 뿐.

“권력은 총구에서 부터 나온다”라고 모택동은 역설했던가. 결국 총과 칼에 의지하여 통치하던 나랏님 말씀이 곧 법이었다. 따라서 나랏님은 법을 알 필요가 없었고, 법이 무엇인지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즉 변호사일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한국 땅에 건국 이후 처음으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타락하면 타락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듯이 법을 아는 대통령도 분명 타락하는데도 한계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옛날처럼 무지막지하게 인권을 유린하거나, 말못할 한을 백성들에게 심어주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최초의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하니…변호사도 변호사 나름인가, 아니면 변호사가 대통령을 할 나라의 틀이 아직 제대로 안 짜여진 것인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치 인맥과 기득권 그리고 정치 문화는 하루 아침에 안 바뀌는 법. 그래서 변호사 출신 대통령도 국민의 기대를 아직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앞으로 더 많은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배출되면, 한풀이를 해줄 법치주의가 더 가까워지리라는 생각이다.

미국은 변호사가 정치하는 나라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24명이 변호사 출신이다. 즉 미국 대통령의 과반수가 변호사 출신인 셈이다. 더우기 변호사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상원의원도 변호사다. 그녀가 언제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인가가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여성, 남성을 불문하고 변호사가 미국 정치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아울러, 미국 상원의원의 절반 가량이 그리고 하원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변호사 출신이다. 법을 집행하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까지도 법을 아는 변호사가 하는 나라 미국. 이것을 보더라도 미국은 확실히 변호사가 이끄는 나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 알게된 사실은 미국에서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정치학을 공부하지 않고, 로스쿨에 입학해 먼저 변호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주로 정치학 교수나 학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정치학보다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 정치 입문의 지름길이다.
세계 정치 1번지인 워싱턴 거리를 걷다가 길에서 부딛치는 사람 5명중에 1명은 변호사라고 할 정도로 워싱턴이 변호사에 의해 움직인다.
“미국은 변호사가 많아서 소송으로 망할 것이다”라는 일부의 부정적 견해는 법치국가 실현과 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설득력을 잃고 만다. 결국 미국의 변호사는 필요악이라기 보다는 법치주의를 수행하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미국은 주먹보다는 법이 더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었나 보다. 이와같은 미국도 주먹을 내려놓는데까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