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류사회 진출 막는 한국 국적법
워싱턴을 떠나는 안호영 주미대사가 고별 인터뷰를 했다. 안 대사는 “주류사회 진출을 더 많이해서 제 2의 김창준 의원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국적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안 대사의 기대는 허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국 국적법이 한인 2세의 발목을 잡아 미 주류사회와 공직 진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법에 의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18세가 되는 3월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8세까지 한국 국적 이탈이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성년자인 2세에게 국적이탈의 의무가 있는 한국 국적법을 대부분 몰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병역기피자가 되어 버렸다. 국적이탈의 복잡한 절차와 막대한 시간 요구 뿐 만 아니라, 국적이탈을 한다 하더라도 한국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기에 이중국적의 증거를 남기게 된다. 미국 뿐 만 아니라 전세계 해외동포 2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역기피자가 되고, 또한 이중 국적자가 되어 각나라 공직 진출이 사실상 차단된 것이다.
2017년 주미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 피해사례에 대한 대처방안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대사관 측에서는 여전히 병무청의 병역의무 부담의 형평성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회피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거주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근거로 드는 주장 자체에 매우 큰 논리적 오류가 있다.
‘형평’이란 평등원칙에서 나온 개념으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할 경우’가 전제되어야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외국에 생활근거를 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한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나 혜택과는 전혀 무관하게 한국과의 유대감이 희박한 채로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 호적에도 없고, 더우기 한국에 갈 의사도 전혀 없는 2세들이다. 권리의 형평성은 논하지 않으면서 의무의 형평성만을 이유로 동일집단이라고 보는 것은 모순이다. 아직까지 유승준과 외국 거주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하면서 논리를 전개하고 또한 개정법을 만든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외국에 생활근거를 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국내에 생활근거를 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과 동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형평성을 논의할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집단을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병역기피 목적의 원정출산자와 병역기피자를 제재하겠다는 개정국적법의 입법취지와는 무관한 선의의 피해자인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게 병역기피자라는 주홍글씨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안 대사가 언급했듯이, 사회는 급변하고 있고 국제결혼, 해외 취업 등으로 지구촌에 흩어져 생활하며 정착하는 한인들의 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한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주류로 인정받고 주요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개정국적법은 현재 또는 미래의 한인 2세들의 공직 진출에 지대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고 또 실제로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오히려 복수국적으로 인하여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경우 하원의원은 25세부터, 상원의원은 30세부터, 대통령은 35세부터 출마 가능한데 개정 국적법의 최초 적용을 받는 1983년 5월 25생부터 이런 선출직을 희망하더라도 2017년 현재 34세에 도달하여 일반 공직진출과 관련하여 복수국적자 문제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현재에도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불이익을 막고자 크리스토퍼 멜베이 군(미국계 혼혈 청소년)을 청구인으로 제기한 제 5차 헌법소원(2016 헌마889)의 결정이 속히 나오길 바란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피해 사례를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국적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다면, 피해구제를 위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히 존재하고 결국 한국정부가 이에 대한 모든 부담을 떠 안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은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 동포들의 정치적, 외교적 성과에 대해서는 극찬하고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개정 국적법 적용으로 따른 공직진출 장애요소를 단순히 개인적, 우발적인 사정으로만 폄훼하는 이중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