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연일 매스컴에서 다루고있는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가 단순한 우려에서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다. 아시안계 노인이나 여자들을 상대로 적대감과 무차별 폭력이 코로나 전염병 처럼 퍼져나가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 이후 아시안 증오 범죄는 150% 증가했으며, 약 3,800건의 증오 범죄가 신고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시안 증오 범죄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번째, 미국 이민법의 역사는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이자 인종 차별의 역사이다. 어두운 이민법의 역사속에서 백인 우월주의로 인한 인종 차별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1850년대에 금광을 캐는 일과 대륙을 잇는 철도를 만드는 일로 중국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백인들은 자기들의 직장을 값싼 중국계 아시안들이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며 1882년에 최초의 차별 법안인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하였다.
그 후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뒤 1943년도에 중국계 이민이 허락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쟁 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망가지고 인력이 부족해진 미국이 60년 만에 다시 중국인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필요에 따라서 차별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 차별을 폐지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두번째,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인종 차별의 현주소이다. 백인우월주의 하에서의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이 잠재적이었다면, 정치 혹은 집단 이기주의 하에서는 아시아계 인종차별이 노골화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 특이하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가 터지자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해야 하는 분별없는 정치적 이기주의의 팽배로 인해 아시아계가 희생양이 되어 정신적 팬더믹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동이 이제는 백인 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인 흑인에게까지 번져 아시안을 겨냥한 집단 이기주의적 인종차별로 변질는 모습이 수면으로 떠오르고있다.
2018년도에 나도 한국인이었기에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에 돈을 내고 정당하게 업그레이드해서 좌석을 예약했는데 백인에게 당치도 않게 자리를 빼앗기는 억울함을 겪었다. 내 아내가 백인이지만 내 한국 이름 때문에 비행기 뒷 좌석으로 쫓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소송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송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언어 문제로 소송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암암리의 인종차별이 쉽게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항공사를 상대로 연방 소송을 제기해서 결국 합의를 보았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은 여전하다. 나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그동안 아시안 증오 범죄 내지는 차별은 수면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코로나 이후는 공개적으로 노골화 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정치인이나 미국인 가운데는 아시안은 투표권 행사를 못하는 힘없는 이방인이란 선입관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그리고 정치적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법적인 대처 방법으로 증오 범죄의 예방과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경찰이나 관계 기관에 신속히 신고하여 법적 조치를 취하고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라는 정치 이념을 떠나 누가 우리의 권익을 위해 싸워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아시안의 권익을 위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인의 목소리를 높여 줄 한인 2,3세가 미 주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가 힘을 모아 주어야 할 때가 왔다. 왜냐하면 한인의 법적, 정치적 역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미국 속의 한인, 한인 속의 미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