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가 기고했던 정의연 기금 의혹의 글을 본 여러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람은 그런가보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일이 더 눈에 잘 띄고 관심을 갖게 된다. 나 역시 기고 이후 이용수 할머님의 기자회견이나 정의연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면 더욱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눔의 집’ 또한 구설에 올라 있다. 나눔의 집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마을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사는 곳이다. 나는 나눔에 집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씨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는 10년 전 이러한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나눔의 집에서 해고를 당한 일본인 연구원이다. 그곳에서 후원금이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다며, “터질 것이 터졌다”고 하면서 “늦게 알려져 할머니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너무나 놀랐다. 내가 14년 전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6년 1월 25일 수요일 레인 에반스 연방하원의원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퇴촌마을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청년이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눔의 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한국말을 아주 잘했고,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하자 “정의의 편에 서고 싶어서”라고 하였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반기를 드는 일본인으로 남기 위해 꼭 일본 국적은 지킬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가 바로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였다. 그는 당시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내게 보여주며 그 카메라는 일본 제품이 아닌 한국 제품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일본 교과서 왜곡을 돕는 일본 기업의 물건은 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의 배타주의적 민족주의에 뭇매 맞을 것을 각오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나눔의 집에서 일했던 그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런 그가 나눔의 집 후원금 부적절 사용 및 할머니에 대한 인권 침해 의혹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로 해고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마음이 몹시 착잡했다.
무라야마씨의 눈에 비친 정의는 얼마나 얼룩진 정의였을지… 자신의 조국이 범한 부끄러운 행동을 그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할머니들을 위해 헌신하며 조금이나마 잘못을 갚으려 했던 그의 마음에 이 비리는 과연 어떤 상처로 남을까!
2007년 2월에 워싱턴에서 미 의회 사상 최초로 하원위원회에서 ‘위안부 청문회’ 가 열렸다. 이 청문회의 목적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날 청문회에서 이용수,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 김군자 할머니가 증언을 하였고, 일본군 종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결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선언적 효과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군 성노예 인권 문제는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와 보상이 강제될 수 있는 법적 효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일본은 총리가 이미 사과를 하였기 때문에 또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총리의 사과는 “총리의 개인적인 사과(My sincere apology)”이므로, 정부 차원의 사과로 볼 수 없다. 이에 일본 국회나 정부의 공적인 “솔직하고 명백한 사과(Unequivocal and clear apology)”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일본은 아시아 여성기금을 조성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미 보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여성기금은 개인적으로 모금된 “사적 기금(Private funds)”일 뿐이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의 “공적 기금(Public funds)에 의한 정부 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보여 온 일본의 전략은 현재 생존해 있는 모든 위안부 할머니가 전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증거가 다 없어져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수 없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나눔의 집에는 5명의 피해자가 남아 있고,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7명이라고 한다.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일본인이 국가의 잘못을 인식하고 헌신한 것 같이, 이제는 정의연과 나눔의 집도 잇페이씨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진 인권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왜냐하면 인권의 탈을 쓴 조직적 이기주의에는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