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전임 정세균 국회의장이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워싱턴을 방문한지 거의 2년 6개월 만이다. 이렇게 국회의 높은 분들이 오면 으레 하는 행사가 있다. 동포간담회이다. 동포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귀국하는대로 선천적 복수국적의 폐해를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들 떠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이 없다. 이번에도 문 의장은 동포간담회에서 똑같은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부당함을 듣게 되었다. 과연 문 의장은 전의 의장처럼 공수표만 날릴지, 아니면 한인 2, 3세의 미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 법적 족쇄를 풀어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미 시민권자 한인이 한국에서 억류되었다는 보도가 동포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영주권을 받은 뒤 시민권자가 된 후천적 복수국적자로 8년간 미군 복무를 했다고 한다. 단지 자신도 알지 못했던 ‘국적상실’이란 요식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출국금지를 당한 것이다. 이처럼 선천적 복수국적법에 대한 개선이나 개정은 커녕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한국 국적법의 심각하고도 부당한 피해의 실태를 소개하여 미국 현지 상황의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NY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 부터 문의 전화가 왔다. 자신의 아들은 미국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한국으로 지원해 가고 싶어하는데 한국가면 군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하였다. 자신은 영주권자 일때 미국에서 결혼하고 여기서 아들을 낳았고 한국 호적에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인지도 몰랐는데 우연히 나의 헌법소원 기사를 자세히 보니 자신의 아들이 만 18세 전에 ‘국적이탈’ 이란 요식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38세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아들은 원정출산자도 아니고 병역기피자도 아닌데, 왜 통보도 해주지 않은 ‘국적이탈의무’를 부과하여 미 공직진출을 막고 병역기피자로 만드는 것이 ‘한국의 국민정서’냐고 따졌다.
미국에서 장교로 활약하고자 하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국의 병무청과 외교부에 여기 저기 알아봤으나 말해 주는 답이 제각기 다 틀려서 오히려 더 혼동스럽기만 하였다고 한다. 할수없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호소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법은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정확한 답을 줄 수가 없었고 단지 이와 유사한 실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5차 헌법소원의 결과를 기다려 달라며 위로해 주었다.
또 한번은 LA에서 한인 2세 여성이 전화를 했다. 미국 최고 정보직에 취직이 되어 신원조회를 하게 된 여성인데 부모를 통해 자신이 이중국적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여기서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지 모르기에 심리적 압박을 받고 문의하는 듯 하였다. 신원조회시 “이중국적을 가진 적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 여성에게 “미국 정부에서 모를터이니 이중 국적이 없어요”라고 거짓말하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이중국적이 있어요”라고 솔직히 말하라고 할지 잠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그 여성에게 “당신은 한국법상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해당됩니다”라고 말해 주고, 더 궁금한 것은 “한국 영사과에 문의해 보세요”라는 말로 회피 아닌 회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나의 심정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
2015년 헌법소원에서 5-4로 패소했을 당시 헌법재판소는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극히 우연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제 광범위한 미 공직과 정계 진출에 대한 재해석을 문 의장과 한국 정부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다시 해야 할 차례가 왔다. 이번 방문을 통해 문 의장은 전 국회의장 처럼 듣고 잊어버리는 공수표 약속을 재탕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국회 정치판이 이 중대한 이슈를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면 최소한 헌법재판소에 탄원하여 현재 계류 중인 제 5차 헌법소원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해 주길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가 선천적 복수국적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 국회에서는 눈치보지 않고 ‘국적 유보제나 국적 당연 상실제’로 개정할 근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개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한국의 세계화는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전종준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