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 가족은 무작정 미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고 또한 뚜렷한 장래가 보장되지 않아서 무조건 보따리를 싸들고 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먼저 학생비자로 바꿔야 한다“ 아니면 “취업비자를 신청하면 된다“ 혹은 “그냥 불법으로 있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등 여러 다른 자문을 해주는 것이었다. 오씨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미국에서 은행구좌를 개설하거나 아파트를 잡을 때 다들 요구하는 것이 소셜 시큐리티 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였다. 당장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소셜 시큐리티 번호가 없으니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우선 급한대로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받으려고 친구의 도움을 청했다. 친구는 어떤 사람에게 돈 천불을 주면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해준다고 하면서 돈과 함께 여권을 주면 된다고 했다.
오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9.11 테러 이후 이민법이 많이 강화되었다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돈만 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돈 천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만약 이것 때문에 다른 일이 꼬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필자의 사무실에 노크한 오씨. “가짜나 불법으로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받으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는데 맞는지요?“ 또 한편으로 “미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더라도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이용해서 취업한 후 꼬박꼬박 세금을 잘 내면 몇 년 뒤일지는 모르지만 사면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사실인지요?“ 그리고 “영주권 신청이나 다른 비자를 수속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지요?“ 등의 질문을 하는 오씨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오씨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다. 먼저 9.11 테러 이후 이민법이 강화되면서 소셜 시큐리티의 발급도 엄격히 강화된 것을 설명 드렸다. 그러면서 오씨의 용단에 칭찬을 해 드렸다.
요즘은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발급하기 전에 신청자의 비자와 영주권 번호 등 이민 관련 서류를 철저히 조회한 다음 번호를 발급해 준다. 우선 방문비자나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없는 비자 소유자는 아예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단기 취업비자(H-1B) 소유자는 소셜 번호가 나오지만 그의 동반가족(H-4)은 번호를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영주권자라고 하더라도 사회보장국에서 이민국으로 이름과 영주권 번호를 확인한 후 번호와 이름이 일치되지 않을 경우 번호 발급을 거절하고 이민국에서 재확인을 한 증명서류를 가져올 때까지 서류진행을 중지하고 있다.
돈을 지불하여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받는 것은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을 염려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신청할 때 일체의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금을 잘 낸다고 할지라도 불법체류자 사면이 언제 될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합법적으로 영주권 신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약 불법으로 받은 소셜 시큐리티 번호가 나올 경우 영주권 취득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혹 떼려 하다가 혹 붙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니 유의하여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비자 문제와 운명을 좌우하는 이민법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상의해야 한다고 오씨에게 강조해 드렸다.
08
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