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500년이 지난 지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한국은 왜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향했던 유신 헌법의 잔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민주 정치의 기본인 삼권 분립(Separation of powers)을 통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의 원칙이 헌법에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삼권 분립이 아닌 이권 분립에 머무르고 있기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도를 뜯어 고치기 전에 정치인의 마음부터 바르게 고쳐야 한다고 한다. 또한 개헌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생각하고 있다. 즉 대통령은 외치를, 국무총리는 내치를 맡는 형태이다. 그러나 둘다 이슈를 놓치고 있다. 현행 헌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기 전에,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 할 수 있는 삼권 분립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즉 바른 정치는 바른 헌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부처는 오직 헌법 재판소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은 삼권 분립이 아니고, 이권 분립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입법부(국회)가 대통령(행정부)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은 탄핵 소추 결정권이다. 그러나 국회는 탄핵 소추 발의권만 있고, 결정권은 없다.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은 바로 헌법재판소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안을 가결하면, 헌법 재판소 재판관 9인 가운데 6인 이상이 찬성하여야 탄핵 소추가 결정된다.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통해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반면, 국회는 탄핵 소추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견제 기능이 약화된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미 의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Impeachment)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미 의회는 대통령 탄핵 소추 결정권 행사를 통해 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있다. 미 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탄핵이 발의가 되면, 상원의 참석 상원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소추가 결정된다.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의회가 탄핵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독선을 막아달라는 국민적 의지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탄핵 소추권은 입법부의 대통령 견제를 위한 정치적 행위이지, 헌법 재판소나 사법부의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위해 헌법 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소추 결정권을 국회로 옮기는 것이 옳바른 삼권 분립의 시작이다.
현재 한국의 헌법 재판소는 최고 권력의 노른자만을 독점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법률이나 대통령의 법적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었는가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위헌 법률 심사권과 정당 해산 결정권은 헌법 재판소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헌법 재판소의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며, 위헌 심사 결정은 9인 중 6인 이상의 찬성이 되어야 한다. 권력이 정부의 삼부처에 분산되어 있지 않고, 단지 9명의 소수 인원만 있는 헌법 재판소에 견제 기능의 권력을 집중시켜 두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에게는 가장 유리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런 독재 지향적 헌법의 기본틀을 의식하지 못하고, 개정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른 삼권 분립의 원칙을 위해, 헌법 재판소를 없애고 그 권한들을 입법부와 사법부로 각각 나눠주면 된다. 만약 헌법 재판소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오직 위헌 법률 심사권만 행사하고, 탄핵 소추 결정권은 국회로, 그리고 정당 해산 결정권은 대법원으로 각각 옮겨야 한다. 또한 헌법 재판관의 임기를 미국 처럼 종신제로 바꾸어 판결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과반수 찬성으로 위헌 심사를 결정하여 대통령의 견제를 더욱 원활하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서로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민주적인 삼권 분립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삼권 분립이 되면 각 부처의 고유의 권한을 되찾아 주어야 제대로 된 삼권분립이 가능해진다. 먼저 국회의 고유의 권한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Make the law). 현행 헌법상의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은 국회의 고유의 권한에 대한 침해이다. 또한, 이것은 의원내각제의 산물로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법률안 제출권은 미 의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이 없다. 따라서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없애야 한다.
둘째, 국회는 정기 국회로만 운영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임시 국회 소집 요구권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로서 대통령이 입법 활동에 개입케 하는 수단이 된다. 국회의 운영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며 행정부의 견제 수단임으로, 행정부의 임시 국회 소집 요구권을 없애고 미국처럼 풀타임(Full-time)정기 국회로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국회의 감사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감사원은 입법부 산하에 두어야 한다. 현행법상 행정부내의 감사원은 대통령의 법과 예산 집행에 대한 국회의 국정 감사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의회 직속 기관으로 연방 회계 감사원(GAO)을 두고 행정부를 객관적으로 감사하면서 견제하고 있다.
헌정사의 큰 걸림돌인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횡포”는 바른 삼권 분립으로 균형을 맞추면서 풀어가야 한다.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대통령 단임제는 국민의 심판의 기회를 배제하는 또 다른 역사적 병폐를 낳고 있다. 따라서 4년 중임제가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는 국무총리란 없다. 한국의 국무총리는 의원 내각제에서 도입된 것으로, 대통령을 삼부처위에 군림하는 “영도자적 지위”로 격상시키고 있다. 의원 내각제를 하는 영국의 여왕이나 일본의 천황아래서의 수상처럼 예산 및 인사권과 같은 실질적 권한이 없는 한국의 국무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을 위한 민심 수습용에 불과하다. 반면에,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 대행 1 순위이며, 상원의장이 되어, 같은 수의 찬반이 나누어 질때, 결정표를 던질 권한이 있다. 지금은 인사 청문회를 개선하기 전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자문하는 그리고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그런 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4년 중임의 정 부통령제를 할 때가 왔다.
개헌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즈음하여, 오늘의 부담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내일의 역사의 심판 속에서 나타날 오늘을 두려워하는 위정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개헌을 위해서는 정권 탈취를 위한 정치적 전술보다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위정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 4강의 진입을 위해, 선진 헌법제도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그 법제도에 담겨있는 정치문화의 도입이 더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