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 사관학교에 합격한 한인 2세가 선천적 복수국적과 뉴욕 총영사관의 업무 실수로 인해 입학 취소 가능성의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출생한 토마스 잔슨(가명) 군은 지난달 유수의 모 사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 법무부로부터 국적이탈신고 수리 거절통보를 받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 이제 한국에서 병역을 마치지 않는 한 만 37세까지 한국 국적 이탈이 불가능해졌다.
고교시절부터 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탁월한 성적과 리더십으로 합격의 기쁨을 안은 토마스 군과 가족은 혹시라도 입학 불허 통지를 받을까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선천적 복수국적이란 한국의 악법 때문이다.
미 연방 정부 공무원인 잔슨 씨가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란 사실을 알게 된 건 지인으로부터였다. “혹시 아들이 이중국적자일지도 모르니 알아보라”는 말에 토마스의 어머니가 뉴욕 총영사관에 문의해 본 결과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은 뉴욕 총영사관의 안내에 따라 지난 2020년 8월에 혼인신고와 토마스의 출생신고를 접수했다. 총영사관으로부터 혼인신고는 처리되었으나, 아들의 출생신고가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해 4월에 뉴욕 총영사관을 방문해 어머니의 국적상실 신고서와 토마스의 국적이탈 신고서를 접수했다.
잔슨 씨 부부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총영사관 직원에 물었으나 직원은 “토마스가 접수일인 4월 현재 만 18세가 되지 않았고 국적이탈신고는 접수일 기준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한다.
이후 토마스는 지난해 12월 사관학교에 지원했고, 신원조회에서 이중국적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국적이탈신고를 이미 접수했기 때문에 ‘이중 국적자가 아니다’라고 표시했다. 그리고 지난달 토마스는 사관학교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토마스 군은 이달 중순에 한국의 법무부로부터 토마스의 국적이탈 신고 반려통지를 받았다. ‘2021년 4월, 한 달 늦게 신고서를 접수하였기 때문에 국적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반려 사유였다. 2003년 7월생인 토마스가 2021년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신고서를 접수했어야 하는데 뉴욕 총영사관이 안내를 잘못하고 업무처리를 잘못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사례들이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진학이나 공무직 진출 시 자신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돼 터진 반면, 이번 사례는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를 인지하고 국적이탈을 하려다 발생한 피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지난 25일 델라웨어주에서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있는 전종준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잔슨씨 부부는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적이탈을 왜 강제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종준 변호사는 “2005년 원정출산과 병역기피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국적자동상실제도를 폐지하고 국적이탈신고의무를 부과한 소위 홍준표법이 통과된 지 17년이 지난 지금, 원정 출산 및 병역 기피와 무관한 미국 출생 한인 2세들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이번 케이스는 시대착오적인 홍준표법과 재외공관의 부실한 업무처리가 한데 더해져서 공직, 정계 및 사관학교 진출에 발목이 잡힌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0년 9월국적이탈신고 관련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국회는 올해 9월 30일까지 개정법을 만들어야 한다.
전 변호사는 “국회가 늦장을 부릴수록 피해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유망한 한인 2세들의 미 주류사회 진출에 발목이 잡는 국적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희 기자>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