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탈보다 국적자동말소가 해법이다

최근 한국의 국적법이 미국 태생 한인 2세들의 공직과 정계 진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다양한 청원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의원은 2세들 국적이탈 예외 허용 개정안의 발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먼저 국적이탈의 비합리성과 복잡성을 들 수 있다. 막연히 ‘국적이탈을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는 구체적인 행정절차를 몰라서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원정출산자와 병역기피자의 경우, 국적이탈이 불가능하나, 왜 동포 2세 남성과 여성에게는 권리도 없이 국적이탈의 의무만 부과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적이탈에 소모되는 많은 시간과 복잡한 절차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국적이탈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일례로,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속 중인 제5차 헌법소원의 청구인인 크리스토퍼 산 멀베이 주니어(Christopher Shawn Mulvey, Jr). 의 어머니는 아들의 국적이탈을 아예 포기했다. 미국은 한국보다 100배가 큰 나라이다 이곳에 영사관은 고작 10곳 밖에 없다. 멀베이 가족이 사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가까운 영사관은 아틀란타에 있는데, 그곳까지 차로 이동하더라도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1. 부모의 국적 상실 신청, 2. 부모의 혼인 , 이혼, 및 사망 신고, 3. 자녀의 출생 신고, 4. 자녀의 국적이탈신청 등 불필요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때 미국의 혼인 증명서나 출생증명서는 한글로 번역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멀베이의 경우, 아버지는 한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미국인이고, 멀베이는 이른바 ‘혼혈인’인 다문화자녀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국 국적이탈에 관한 법령과 제도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법령과 제도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들 부자처럼 많은 한인 2세 가정들도 복잡한 국적이탈 절차를 스스로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적이탈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는 국적이탈시 출생신고를 요구 하기에 이중국적의 증거가 남는 점을 들 수 있다. 수많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사관학교나 연방정부 공무원이나 정계 진출 등의 신원증명 시, 복수국적자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복수국적자인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김으로써, 나중에 위증으로 법적 제재등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2010년 개정법의 영향을 받는 세대에게는 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이다. 여성도 국적이탈을 하지 않은 한 계속 한국국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법의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 공직이나 정계로의 진출에 불이익을 당할 염려가 있고, 이 점 때문에 국적이탈을 꺼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국적이탈을 못한 사람에게 국적이탈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임시 방편의 법안이기에 현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그러한 임시법안조차 알지 못해 결국 국적이탈을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더 생길 것이다. 또한 임시법안에 대해 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똑같이 복잡한 국적이탈 조건이나 이중국적의 증거를 남기는 점을 우려하여 아예 절차를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도 ‘생색내기’에 그칠 확률이 놓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앞길을 가로 막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결국 후천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 태생 사람들의 한국국적이 미국 시민권 취득과 동시에 자동말소 되듯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경우에도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한 일정한 시점에 한국국적이 자동으로 말소되도록 정하는 법안이 보다 근본적이고 타당한 대책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하루속히 멀베이의 헌법소원을 결정해 주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전종준 변호사, VA>

출처: http://dc.koreatimes.com/article/20180403/11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