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 변호사의 호소 “내가 ‘홍준표법’을 문제 삼는 이유는…”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재외동포청 신설에도 불구하고 재외동포들은 국적법에 따른 불만이 여전하다. 현행 국적법은 지난 2005년 가수 유승준(스티브 유)씨의 미국 시민권 취득을 통한 병역기피 논란 때 홍준표 당시 의원(현 대구광역시장)이 대표발의해 개정한 법으로, 이른바 ‘홍준표법’으로 불린다. 만18세가 되는 당해 3월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만 37세가 되는 해까지 20년간 한국 국적에서 이탈할 수 없도록 강제한 것이 골자다. 이 같은 법은 유승준 논란으로 국민여론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 원정출산 등 미국 시민권 취득을 통한 병역기피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해외에서 태어난 재외동포 2, 3세까지를 ‘잠재적 병역기피자’로 취급해 모국연수와 방문, 거주국 공직 및 정계진출 등을 가로막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급기야 ‘홍준표법’은 2020년 9월 헌법재판소에서 ‘과잉금지’에 따른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재 결정에 따라, 2022년에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국적포기를 허용하는 국적법상 예외조항도 신설됐다. 하지만 동포사회에서는 “신고제만 예외적 허가제로 바뀌었을 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불만이 여전하다. 일례로 250만명에 달하는 재미동포 가운데 약 20만명이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 3세로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추정된다. 이들 한인 2, 3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국적법’ 때문에 부모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하거나 유학 올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이 같은 문제로 각종 민원과 문의가 속출하자 최근에는 주미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까지 나서 동포사회 달래기에 애를 먹고 있다.

전종준 미국변호사는 2013년부터 무려 10년째 250만 재미동포 사회를 대변해 불합리한 국적법에 따른 문제제기를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로펌을 운영하는 전 변호사는 한국 최초로 미국 이민법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이를 통해 재미 동포사회에 이름이 알려진 이민전문 변호사로, 2020년 헌재에서 공개변론을 통해 ‘홍준표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당사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동안 부당한 비자발급 거부에 분개해 콜린 파월 전 미 국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고, 탈북동포 미 영주권 신청 무료 변호, 한국 및 아시아 5개국 혼혈인 자동시민권 부여 법안을 미 하원에 상정하게 해 동포사회에서 인권변호사란 명성을 얻었다. 주미 워싱턴 총영사관 법률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오는 6월 5일 재외동포청 신설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온 전종준 변호사는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현행 국적법 문제와 해결책’이란 토론회를 열고 국적법 개정을 재차 주장했다. 앞서 지난 5월 18일에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한덕수 총리와 별도로 만나 동포사회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난 5월 18일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도 워싱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외동포청이 열리고 초대 재외동포청장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에 대한 추가 개정을 주요 업무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토론회를 하루 앞둔 지난 5월 24일 주간조선과 만난 전종준 변호사는 “대통령 공약인 재외동포청이 신설돼도 국적법 개정 없이는 한국에 들어올 재미동포 2, 3세들은 거의 없다”며 “재미동포 2, 3세들이 미국 공직진출 등에 불이익을 받으면 한국으로서도 막대한 손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현행 국적법 무엇이 문제인가. “외국에서 태어난 동포 2, 3세에까지도 선천적인 한국 국적을 부여해 현지 공직진출 등에 불이익을 받게 하는 악법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어서 승진과 한국 관련 업무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는 사람도 상당하다. 주류 사회 편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국적법에 대한 문제는 언제 인식했나. “2013년쯤 미국 국무부에서 일하는 한 재미동포로부터 자녀의 한국 입국 관련 문제를 의뢰받은 직후부터다. 자녀가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유학하려고 했는데,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안 내줬다. 그때 ‘홍준표법’에 따른 문제를 처음 인식했다. 그 후 헌재의 문을 다섯 차례 두드렸다. 결국 지난 2020년 9월 미국 국적 아버지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한 한국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 한 청년(크리스토퍼 멀베이)의 사례를 앞세워 7 대 2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냈다.”

– 필요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되지 않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동포 2, 3세들이 상당하다. 부모들도 자녀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해당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민법 변호사인 나조차 미국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둔 아들이 선천적으로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유학하려고 한국비자를 신청하려고 했을 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비자발급이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들도 기가 막혀 하더라. 그래서 2014년 아들 사례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걸었는데 당시 각하됐다. 사실상 ‘잠재적 병역기피자’로 낙인찍힌 까닭에 아들은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아들과 결혼한 미국 며느리도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데, 아들이 못 가니까 함께 못 가고 있다.”

– 동포 2, 3세들은 한국 국적을 가진 사실을 대개 어떻게 알게 되나. “한국에 입국하려고 했을 때 현지 한국 총영사관에서 비자발급을 거부하면서 ‘한국여권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다. 미국 정부기관 등에 취업하거나, 미국 육해공군 사관학교 등에 입학하려고 할 때 신원조회 과정에서 ‘과거 복수국적 보유 여부’를 문의받고 뒤늦게 자신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미국 연방정부 한국계 공무원 가운데도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발급을 거부당한 후에야 자신의 한국 국적 보유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 국적이탈 여부를 선택하라고 대상자들에게 개별통지가 이뤄지지 않나.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 일일이 개별통지할 방법이 없다. 미국 땅은 한국 땅의 98배다. 미국 주재 한국 재외공관은 10개밖에 없다. 총영사관 등에 비치된 국적이탈서류도 한글로만 되어 있다. 재미동포 2, 3세들 중에는 한글로 된 문서를 못 읽는 사람도 상당하다. 국적포기신청서를 받아서 읽고 처리할 수조차 없다.”

– 한국 국적포기 절차가 까다롭나. “우선 국적이탈신청에 필요한 구비서류만 ‘국적상실신고서’ 등을 포함해 무려 15개다. 자녀의 국적이탈에 앞서 부모가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른 국적상실신고도 해야 한다. 국적이탈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출생신고부터 하게 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 자녀의 이중국적 증거가 남아서 공직진출 등에 불이익이 생긴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왜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느냐. 게다가 한국 출생신고는 부모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한데 부모가 이혼했거나 이미 사망한 경우는 어찌하느냐. 이 경우 한국에 혼인신고, 협의이혼신고 등을 다시 해야 한다. ‘아들의 국적이탈을 위해 전 남편과 재혼해야 하느냐’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 병역의무가 부과된 동포 2, 3세 남성들한테만 해당하는 문제 아닌가. “동포 2, 3세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 의뢰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진 딸이 바이든 행정부에 픽업됐다. 한데 딸이 신상조회 과정에서 과거 복수국적 보유 여부를 문의받았다며 어떻게 답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어봤다. 신상조회 때 현재 복수국적 보유 여부가 아니라 과거 복수국적 보유 여부까지 묻는다. 미국에서는 신상조회 때 만약 거짓으로 답하면 평생 낙오자가 된다. 그렇다고 복수국적을 가진 적이 있다고 답하면, 향후 특정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공직생활에 불이익을 받는다. 의뢰인의 질문을 받고 차마 답해줄 말이 없었다.”

– 재미동포 사회만 이런 불만을 가진 것 아닌가. “독일과 프랑스, 일본, 칠레 등지에서도 문의가 들어온다. 독일인 남편, 프랑스인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각각 취업과 모국연수를 하려는데 복수국적 보유 여부를 물어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식이다. 이번에 한국 국회에서 ‘국적법’ 토론회를 연다고 하니까, 미국 한인신문에는 1면에 보도됐다. 전 세계 각지에서 응원이 쇄도했다.”

지난 5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적법 관련 토론회.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적법 관련 토론회.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2005년 ‘홍준표법’ 도입 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나. “없었다. 과거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했다. 홍준표법이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의무를 동포사회에 부여한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유승준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 등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했다. 한국 국적이 자동상실돼 유승준은 국적이탈신청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유승준 논란으로 생겨난 ‘홍준표법’으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 2, 3세들은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국적이탈의무를 부과받았다. 홍준표법의 역설이다. 전 세계에 원정출산이나 병역기피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 왜 죄없는 한인 차세대들에게 이 같은 의무를 부과하느냐.”

– 2020년 9월 ‘홍준표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끌어냈다. 2022년 국적법상 예외조항 신설로 이미 해결된 것 아닌가. “홍준표법의 연장선일 뿐이다. 신고제만 예외적 허가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만 18세가 지난 후에도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예외적으로 열린 것이다. 기회를 허가받았다뿐이지 출생신고부터 시작하는 모든 복잡한 절차를 동일하게 반복해야 한다. 예외적 허가신청에 필요한 복수국적 보유에 따른 불이익 등을 증명하는 자료도 추가 제출해야 한다. 서류처리기간도 1년 이상 걸려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놓친다. 국적법에 따른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동포 2, 3, 4세들까지 계속 늘어나는 만큼, 국적법 개정 없이는 이 같은 문제 역시 점점 늘어날 것이다.”

– 대안은 무엇인가. “국적법을 개정해 국적자동상실 조항을 넣는 것이다. 이건 특혜가 아니라 피해구제다.”

– 법 개정에 따른 병역기피 등 악용 우려는 없나. “‘출생 후 17년 이상 계속해 외국에 주된 생활근거를 둔 복수국적자’ 같은 조항을 삽입하면 된다. 원정출산 등을 통한 병역기피자들은 대부분 한국이 주된 생활근거지다. 추가로 영주권 신청자나 영주권자, 시민권자의 자녀로 제한하는 대안도 있다. 원정출산은 대부분 단기비자다. 향후 한국 국적을 재취득하고자 원하는 동포 2, 3세에게는 ‘법무부 장관 허가’ 등을 통해 국적재취득 가능성을 열어두면 된다.”

– 국회의원들 반응은 어떤가. “우선 이슈에 대해 잘 모른다. 알게 돼도 ‘한국은 BTS도 군대 가는 나라’라며 국민정서법 등을 들먹이며 좀처럼 나서려 하지 않는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국회 토론회를 무소속 김홍걸 의원(외통위)의 도움으로 연 것도 이런 까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워싱턴에서 망명생활을 했을 때 아들 김홍걸 의원도 옆에 있었다. 그나마 워싱턴에 지인도 많고, 동포사회와 좀 인연이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나서주는 사람이 없다. 법이 잘못되면 속히 개정하는 것이 큰 정치고 선진국회의 모습이다. 국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한국계 2, 3세들이 미국 공직사회에 진출해 한국 업무를 맡아서 한국 측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할 수도 없다. 한국계 미군 장교 가운데도 국적법을 피해 한국에 보내지 않고 이탈리아로 보낸 케이스가 있다. 결국 한국에만 손해다.”

– 국적법이 개정되면 무엇을 하고 싶나. “아들과 함께 당당하게 인천공항으로 들어와 한국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이다.”

<이동훈 기자>

<출처: https://www.chosun.com/politics/2023/05/28/YEQTNZQZ2VCQZLAA3USG2C2Z2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