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오바마’ 거부한 한국의 헌법재판소
미국에 사는 한인과 쿠바인의 숫자는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쿠바인의 경우에는 연방하원의원이 7명, 연방 상원의원이 3명, 그리고 이번 대통령 후보로 2명이 나왔다. 반면에 한인의 경우 단 한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나왔을 뿐이다. 20여년 전에 한인 1세 김창준의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직도 한인 2세 중에 연방의원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필자가 제기한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폴 사(Paul Sa)의 헌법소원을 5-4 결정으로 2015년 11월 26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18세 까지의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 선택기간이 충분하다고 결정했다. 결국 미국 태생 한인 2세가 18세 때 한국 국적 이탈을 하지 못했으면 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38세가 되어 병역이 면제 되지 않는 한, 한국 국적 이탈을 할 수 없다는 국적법 규정은 계속 유효하게 남게 되었다.
여기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라 함은 미국에서 태어날 당시 부모 중 한사람이 한국 국적자이면, 그 자녀도 자동적으로 미국 국적과 한국국적을 갖게 되는 자를 말한다. 대부분의 미주 동포의 자녀가 이에 해당되며, 미군과 국제 결혼한 한국 여성의 자녀 그리고 여러 다문화 가정의 미 시민권자와 결혼한 한국인 배우자의 자녀 전부를 포함한다. 한국의 국적법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최근에 헌법소원을 통해 언론에 알려진 것이 처음이며, 그동안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상태이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전망이다.
오바마는 아버지 국적에 의해 케냐 국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이유는 케냐법에 의해 성년때 케냐국적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케냐 국적이 자동말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 후보이자 텍사스 주 연방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Ted Cruz)는 카나다 출생으로 인해 카나다 이중국적 소유자였다. 이것이 정치문제로 부각되자 그는 카나다 국적을 포기했다.
그러나 한인 2세들은 한국 국적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인 2세는 38세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할 수 없기에 미국 대통령이나 상원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중국적자로 몰려 정치적 생명이 끊어질 것이 확실하다. 이런 예견 가능한 현실을 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눈으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실제 피해자가 발생할 때까지 그저 지켜보겠다는 것 같다.
한국 속담에 “빈대 한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이 있다. 일부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때문에 악법이 필요하다면 과연 그 법은 제대로 된 법인가?
최근에 서울에 있는 미 대사관에서 자문 요청이 와서 한국의 국적법에 대한 브리핑을 해 주었다. 미 시민권자 한인 2세들이 정보 부족으로 한국에 와서 문제가 생긴 뒤 미국 대사관에 접촉했을 때는 이미 손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늘고 있다며 미 대사관도 한국의 국적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고 자문해 온 것이다. 이렇게 자기 시민이라고 보호하려고 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미 대사관의 태도에 나는 꼼꼼하고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러한 국적법으로 인해 미 시민권자인 많은 한인 2세들이 잘못된 정보를 받고 한국에 와서 체포되고 군대에 가야하는 외교적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시점에 헌법재판소는 필자가 4번째로 제기한 헌법소원을 거절한 것이다. 문제의 법을 개정하는데 참여한 석동현 한국 이민법 학회 회장을 작년 한국 국회토론회에서 만났다. 그는 법의 목적이 병역 입영자를 확보하기 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 발표를 했던 필자는 대부분의 미주 한인 2세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한국 호적에도 없고, 한국에 가서 살 사람들도 아니며, 이미 병역이 면제된 해외동포 2세라고 말해 주었다. 국적이탈에 관한 한국 국적법 규정을 알지 못하였고 또한 한국정부도 통보를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보다 100배나 큰 미국에 영사관은 고작 10곳 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큰 도시 몇 곳을 빼고는 미 중서부등에 흩어져 있는 미주 동포 한인 2세가 18세 까지 한국국적을 이탈해야 하는 의무와 그 방법도 모르고 있고, 더우기 구지 한국국적을 이탈해야 할 필요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국적 이탈 절차도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소요되는 절차라 행정편리식 규정인 것이다. 원정출산자도 아니고 병역기피자도 아닌 해외 한인 2세가 18세 전에 국적 이탈을 하려면 먼저 미국 출생증명서를 번역 공증하여 한국 호적에 올린 뒤 한국 국적 이탈 신청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만 살 한인 2세에게 복수국적의 증거만 남기게 된다. 단지 18세에 한국국적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38세까지 국적이탈을 못하게 만들어 미국 정계 및 공직 그리고 사관학교 입학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을 받아 대답하는 석회장이 “몰랐다. 그런 휴유증이 있는가?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아야겠다” 라는 말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던가? 그는 간단이 “한국에는 국민정서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으로 더 이상 반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그의 마지막 변명은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참석한 병무청 관계자는 “형평의 원칙 때문에…” 라며 개정을 반대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외교부의 한 국장은 “한인 2세들이 공직 진출등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을 많이 받고 있고 그들을 구제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병역이 이미 면제가 된 해외동포 한인 2세들이 ‘병역면제 혜택’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도 마치 한인 2세 전부가 병역의 의무는 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혜택만 받을라고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도리여 입법자들이 국민의 정서를 오도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한국에서 출생하고 미 영주권자에서 미 시민권자가 된 유승준 케이스와 아직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원정출산자와 병역기피자를 해외동포 한인 2세와 구별하지 못한 눈먼 입법을 헌법재판소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메시지는 “한인 2세는 한국에 오지마라. 그리고 미국 공직 진출을 포기하라” 라는 선포와 다르지 않다. 세계화에 역행하는 눈먼 입법자와 헌법재판소가 시대를 인도하면 한국의 국익과 해외동포의 권익은 다 같이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결국 ‘한국계 오바마’를 거부하는 헌법재판소는 시대 착오적 결정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지금 글로벌을 외치고 스포츠나 예능을 통해서 국위 선양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나오면 그의 뿌리를 찾아 그가 한국과 조금만 연결되어 있어도 매스컴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과연, 한국 국민정서는 무엇인가? 한국민들의 정서는 해외에 나와서 살고있는 죄없는 젊은이들속에 세계적인 정치가나 입법가가 나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인가?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의 위상과 긍지는 자랑하면서, 한인 2세의 발목을 잡는 한국 국적법 이라는 이중 잣대는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Cui Bono’ 라틴어로 ‘누가 혜택을 볼 것인가’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누가 혜택을 보는 것일까? 한국정부는 아직도 국민정서를 내걸며 해외동포 2세들이 한국에서 혜택을 볼려고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혜택은 한국과 해외동포 모두가 받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한민족 네트워크를 통한 세계화인 것이다. 곧 다가올 선거에 해외동포 투표권 운운하며 드나드는 입법자들, 그들은 아는가? 미주동포가 여기서 잘 사는 것이 한국의 국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동포들의 표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해외동포의 실질적인 삶의 문제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제는 미주동포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필자는 조만간에 5번째의 헌법소원을 구상할 것이다. 또 다시 헌법소원을 할 때는 청구인의 이름만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헌법소원을 할 때마다, 새로운 법적 이론을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청구인을 모색해야하는 힘든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러나 마치 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 들어 가듯이, 한국의 세계화가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그냥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한국도 케냐법 처럼 국적법을 바꾸면 ‘한국계 오바마’ 탄생이 가능하고 쿠바인 처럼 미 정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잘못된 국적법을 만든 사람들은 먼저 국적법을 바로 잡는 일부터 해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국적법은 한국의 국익과 800만 해외동포의 권익을 함께 추구하게 하는 의미있는 그리고 가치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