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국민선거가 뜨거운 감자다. ‘처음부터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과 ‘새로 부여된 재외국민 선거권은 불충분하다’는 주장이 팽팽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헌법 재판소는 주민등록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직 선거법과 지방선거법 그리고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즉 재외국민의 선거권 부여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실현이라고 못을 박았다.
2009년 2월,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을 의도했던 정치인들에 의해 국회에서 개정 공직선거법이 통과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서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이 인정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반쪽 권리에 불과하다. 즉 개정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재외국민에게는 대통령 선거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권만 주어진다. 반면에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국회의원 재 보궐 선거, 국민투표와 지방자치 선거권등은 재외국민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이런 제한적이고 차별적인 공직선거법이 나오자 마자 2009년 5월, 헌법재판소에 공직선거법에 관한 새로운 위헌 소송이 제기 되었다. 2010년 6월, 재외국민의 투표권행사의 제한을 이유로 또 다른 헌법 소원이 제기된 상태이다. 지금은 해외 선거권으로 해외국민의 분열을 우려할 때가 아니라 이런 연이은 위헌 소송으로 인해 국내인과 해외국민과의 분열의 신호탄이 되고 있는 것을 우려해야 할 때이다. 이 시점에서 국내인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식이고, 재외국민은 ‘ 왜 내 밥그릇은 작냐’는 식으로 끝이 안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 헌법재판소의 딜레마가 있다. 재외국민에게는 전국 단위 선거는 인정하고 지역 단위 선거는 인정하지 않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과연 헌법에 불합치한 것인가? 만약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에게 지역선거권까지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 ‘지방세도 내지 않고 지방의 특성도 모르면서 어떻게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냐’는 강한 국내 여론에 부딪칠 수 있다. 반대로 지역선거권을 불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는 납세의무가 권리의 조건이 아니라고 판결한 헌법 재판소의 2007년 결정과 상반될 수 있고 또한 거친 해외 여론에 부딪칠 수 있다.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투표방법이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해외국민은 재외투표소에 가서 직접 투표해야 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이 공관투표는 보통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정한다면, 우편제도 실시에 따른 막대한 예산과 부정선거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만약 공관 투표가 합헌이라고 결정한다면, 선거비용의 부담이나 공정성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부인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2007년 결정과 상반 될 수 있고 또한 전 미주에 12곳의 투표소에서의 선거참여도는 현실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60만 해외동포를 위한 해외동포재단의 예산은 쥐꼬리 만큼 책정하는 정치인이 이젠 해외동포에게 통 큰 선거권을 선사하고 선거를 위한 예산을 펑펑쓰는 정치인의 두 얼굴속에 ‘헌법재판소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현재 계류 중인 공직선거법에 관한 헌법 소원의 결정을 조속히 내리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침묵은 직무 유기이다. 내년 4월 총선 이전에는 반드시 위헌 여부의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마지막이 아니다. 헌법 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내인과 해외동포간의 영원한 38선이 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재외국민의 선거권이 국익과 국민 화합을 해치는 쪽으로 흐른다면, 국회와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결국 국민이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 113개국에서 164개 공관의 투표소에서 재외국민 224만이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한글도 모르고 투표용지도 제대로 볼지 모르는 재외국민에게 까지 참정권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와 세계화에 어떻게 기여 할 수 있을 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해외 투표의 편의성과 공정성 그리고 현실 타당성이 과연 헌법재판소의 결정 하나만으로 다 충족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다.
국제화시대에 즈음하여, 한국의 진정한 세계화와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사익보다는 국익을 앞세워야 할 때이다. 지금 한국과 한국인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은 한국 참정권보다는 지구촌 참정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