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한국에서 온 지 두어 달 된 유학생을 상담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그 청년은 이곳에서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공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요즈음은 컴퓨터로 작동하는 차들이 많아 평소하고 싶었던 일을 자기의 전공과 연결시켜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음 한국에서 부터 해보지 그랬냐고 하니 “주위 시선이 따가워서요” 라고 했다.
또 한번은 젊은 여자분이 상담을 하며, 한국에서 피부 관리사를 하였는데 떳떳이 자기 직업을 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기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람들도 자기 직업을 존중해 줘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고 했다. 유학생 와이프가 남편 공부시킬때 웨이츠레스나 아이 보는 일을 했다고 말하면 “너무 수고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일부에서는 왜 그런 일을 했냐며 낮게 보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조선 왕조 500년의 권위주의적인 선비 사상 그리고 기술직을 천대하는 사회 풍조가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며 사는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으로 비쳐지는 유교 사상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기술직보다는 관료직에 더 매료되어 살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직업의 약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차별하고, 강자에게 강하기 보다는 더 약해지는 사회 풍조속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무색케 한다. 그러나, 모든 직업은 존경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 뿐더러 하나 하나가 다 귀중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곳 미국에서는 직업의 귀천보다는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국보다는 주위의 시선이 관대하다.
이제 우리는 그 마음의 시선을 과감이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 내가 사는 방법은 내 자신을 아는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할수 있는 일을 할때 가장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일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보다는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해야 더 멋있게 비쳐지나를 걱정하여 자신의 장래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에게 비쳐지는 나에게 연연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는우를 범하기 보다는?내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 과연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솔직하고 충실할 수 있는가를 발견하여 새로운 나를 발견해 보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인 것 같다. 사회의 틀에 억매여서 나 자신을 잃기보다는 나 자신을 찾아서 사회의 시선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가식의 위풍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그 일을 할때, 우리는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시선에 굴복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 보다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비록 남 들이 나의 직업을 막일이라고 여길지라도,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속에 사회도 따라 변할 것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사회도 마음을 열 것이고, 내가 먼저 일류주의에 물들지 않으면 사회도 더 인간적인 매력에 빠질 것이다.?사회에 흡수되기 보다는 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마음의 시선을 갖는 자가 되어야겠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부정의 따가운 시선을 제압하는 용기가 승리할 것이다. 남이 못하는 아니, 남이 안하는 그 일을 하는 주인공이 많아지면 많아 질수록, 우리의 미래는 더 밝아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