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시리즈 – 동포청 출범 한달 / 이것만은 바꾸자
▶ 본인의사 무관한 이중국적, 미 공직·주류진출 불이익…까다로운 ‘이탈신고’ 낭패
750만 재외동포들의 염원이었던 재외동포청이 지난달 5일 공식 출범한지 꼭 한 달이 됐다. 재외동포재단 설립 이후 20년 넘게 제자리 걸음을 하던 재외동포청이 마침내 출범할 수 있었던 데는 윤석열 정부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 재외동포청에 거는 한인들의 기대가 큰 만큼 재외동포들이 조속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법 문제 등 현안들도 산적해 있다. 앞으로 재외동포청이 한국 정치권과 함께 최우선 순위를 두고 해결해야 할 이슈들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박모(19)씨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국에 이민 와 영주권을 받은 뒤, 박씨가 만 18세 전에 부모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자동으로 시민권자가 됐다. 같은 해 미국에서 태어난 최모씨는 출생 당시 아버지가 영주권자, 어머니는 시민권자였다. 두 사람 중에 누가 한국 국적을 이탈해야 할까? 정답은 놀랍게도 미국에서 태어난 최씨다.
박씨는 국적법 제15조에 의해 미국 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돼 번거로운 국적이탈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최씨는 국적법 제 2조 1항 1호에 의해 출생 당시 아버지가 한국 국민이었기 때문에 출생과 동시에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됐다.
최씨처럼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분류돼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되지 않는 현실은 현행 한국 국적법의 모순을 반영한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걸까?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지난 2005년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국회의원(현 대구시장) 주도로 일부 한국인들의 원정출산에 따른 병역기피를 방지할 목적으로 발의됐다. 이른바 ‘홍준표법’의 시행으로 1983년 5월25일 이후 미국 등 해외에서 출생한 한인 남성의 경우 출생 당시 부모 중 1명이라도 한국 국적자라면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마쳐야 한다.
이 기간 안에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중국적을 갖게 돼 만 38세가 되는 해 1월1일까지 20년간 한국 내 병역의무 대상자가 된다. 국적이탈을 하지 않은 한인 2세들은 1년 중 90일 이상 한국에 장기체류할 때 병역의무가 부과된다.
일부 한국인들의 병역기피 방법을 봉쇄하려고 대다수 한인 2세들을 ‘잠재적 병역기피자’로 만든 홍준표법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악법이다. 뿐만 아니라 2세들은 미국에서도 이중국적으로 인해 사관학교 진학이나 연방공무원 취업, 정계 입문 과정에서 공직 진출의 길이 막히는 등 불이익이 크다.
선천적 복수국적자 여성은 병역의무가 없어 언제든지 국적이탈이 가능하지만, 복수국적 유지가 어려운 직업을 선택할 때 피해를 볼 수 있다. 한인 2세 남성이 만 18세 기준을 놓쳐 국적이탈을 하지 못했을 경우 2022년 9월1일 개정된 국적법에 의거, ‘예외적 국적이탈’이 허용된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5개의 조건을 충족시킨 뒤 국적심의위원회를 통과한 후 법무부 장관 허가까지 받아야 비로서 병역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문제는 개정법의 기준이 너무 모호해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피해를 제대로 구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까다로운 국적이탈 과정에 대해서도 한인들의 불만이 높다.
한국에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부모의 혼인신고-자녀의 출생신고-부모의 국적상실 신고가 선행돼야 한다. 이후에나 자녀의 국적이탈을 시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가려고 했던 18세의 한인 2세 여대생이 신청한 유학비자가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이유로 미국의 한 총영사관에서 거절됐다. 더욱이 이 여학생은 부모의 이혼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국적이탈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혼 외에도 국제결혼, 별거, 사망 등 다양한 사정에 처한 이민 가정의 자녀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개인신상 정보를 제공할 수 없어 출생신고가 어렵고, 국적이탈 신청 또한 불가능하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지닌 국적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는 미국 등 외국에서 태어나 17년 이상 외국에 거주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로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출생시까지 소급하여 자동적으로 국적이 상실되는 ‘국적유보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전 변호사는 “이제부터라도 재외동포청이 앞장서 법무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의 협조를 받아 국적 자동상실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