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워싱턴의 새벽을 깨고 한국에서 헌법소원 승리의 소식이 왔다. 7년 간의 기다림과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2013년도에 처음 사무실로 찾아온 의뢰인을 통해 시작한 헌법소원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4번을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청구인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한인 2세를 통해서 하는 것이 더 큰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5차 헌법소원을 2016년 접수할 수 있었다.
접수 후 3년 후인 작년 12월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돌아온 후 9개월 만에 재판관 7: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동안 멀베이군과 같이 한국과 별다른 접점이 없이 생활의 근거를 외국에 두며 살아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사실상 한국 병역과는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정서’ 내지 ‘기회주의적 병역면탈 방지’라는 이유로 국적이탈에 지나친 제한을 받아왔다.
이번 결정은 이들과 주된 생활의 근거를 한국에 두고 이익을 향유함에도 병역의무만 면하기 위해 국적이탈을 하는 복수국적자들을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하여야 함이 마땀함을 인정한 것으로, 그동안의 호소가 받아들여진 것이고 매우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또한 4차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복수국적으로 인해 공직 진출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는 극히 우연적인 사항이라고 한 것에 대해 연봉 3만 불의 연방공무원직 채용 시에도 신원조회를 거쳐야 하는 증거자료를 제출함으로써 공직의 범위가 광범위함을 증명해 준 것이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외국의 시스템과 이들의 실제적인 생활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 한국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이들이 외국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입법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입법의 방향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원정출산과 병역기피자를 막기 위한 ‘홍준표 법’이 생기기 전에는 한국 호적에 올리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는 국적선택의 의무가 없었다. 따라서 새 입법은 홍준표 법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또다시 국적이탈을 허락하면서 지금처럼 먼저 출생신고를 한 뒤 국적이탈을 해야 하는 행정업무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또한 여전히 복수국적의 증거를 남기게 된다.
이는 정계나 공직진출 등에 불이익을 초래하므로 18세에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한 한국국적이 자동으로 상실되는 제도를 법제화하여야 한다.
둘째로, 선천적 복수국적자 중에 조부모나 부모에 의해 한국 호적에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인 2세는 호적 등재 사실도 모른 채 한국에서는 병역 기피자로, 미국에서는 이중국적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따라서 이런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는 본인이 한국 호적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국적이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해야 한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2년 9월 30일까지 새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내년에 18세가 되는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내년에 국적이탈을 해야 하는 건지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회는 하루 속히 개정법을 통과시켜야 이번 결정의 의미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로 이끈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해외동포의 응원과 언론의 협조가 있어서 가능했다. 7년 동안 무료 봉사로 진행하던 중 작년에 LA 의사협회에서 유일하게 1,000달러를 후원해 주어 큰 격려가 되었다.
특히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나의 워싱턴 로펌으로 변호사 실무실습을 한국에서 온 사법연수생들인 김상률·천하람·최중현·오승혜 변호사 등의 적극적인 배려와 동참에 감사를 전한다.
끝으로 2개월 전에 하늘 나라로 먼저 간 나의 아내 크리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불가능해 보였던 헌법소원이 열매를 맺었다. 4전 5기로 7년 만에 해외동포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이다.
<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