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2020년 9월 헌법재판소의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국적법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고 오는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배경을 잠깐 돌이켜보면, 헌법재판소는 2017년,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한국계 ‘혼혈인’ 크리스토퍼 멀베이(Christopher Mulvey, Jr.) 군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만 18세가 되는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으면 병역을 마치지 않는 한 만 37세까지 국적이탈을 불가능하게 한 현행 국적법(소위 ‘홍준표법’) 규정이 멀베이 군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기뻐한 것도 잠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채택한 개정안은 멀베이를 구제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개정법 하에서 국적이탈허가를 받으려면 5가지 조건을 충족한 뒤 ‘국적심의위원회’를 거쳐 마지막으로 법무부 장관의 허가까지 받는 철통 같은 관문들을 통과하여야 하기에 멜베이의 소송 전이나 소송 후에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첫째, 왜 멀베이에게 국적이탈 의무를 부과 하는가? 멀베이는 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한국에 출생신고를 한 적이 없고, 한국에서 살 의도도 없는 미국에 생활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이다.
2005년 홍준표법 이전에는 멀베이는 국적이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홍준표법으로 원정출산이나 병역기피자를 막으면서, 국적법 제 12조 단서 중 ‘대통령령’을 삭제함으로 전에 없었던 국적이탈의무가 멀베이에게 생기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홍준표법의 실수’인 것이며, 헌법재판소도 이를 15년 동안 못 보다가 2019년 공개변론 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병역과 무관한 멀베이에게 ‘병역면탈 방지’및 ‘병역 자원 확보’라는 근거없는 논리로 여전히 국적이탈의무를 유지하고 국적이탈을 까다롭게 하려는 개정법의 목적과 취지는 상식에 어긋나고 또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둘째, 왜 멀베이에게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 한국에 출생신고를 강요해야 하나?
멀베이는 한국에 출생신고를 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러나 국적이탈을 하려면 선결조건으로 부모가 한국에 출생신고부터 하여야 한다. 출생신고는 그 자체가 복수국적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멀베이 가족을 포함, 많은 한국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출생신고를 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제 5차 헌법소원 당시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녀가 국적이탈신고를 할 수 없게 하는 국적법시행령 규칙에 대해서도 위헌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부모에게 당연히 출생신고 의무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신뢰성 있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합헌으로 판단하여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반쪽 승리가 된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을 재판부가 놓쳤기에 현재 새로운 쟁점으로 제 6차, 7차 헌법소원이 계류 중이다.
셋째, 왜 멀베이가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를 받아야 하나?
멀베이는 핵 잠수함부대 지원서에 ‘NO이중국적’을 보고 직업 선택에 제한이나 불이익이 있는 등 정당한 사유를 어떻게 밝혀야 할지 불확실하다. 예외적 이탈 허가를 신청하려면 복잡하고 까다로운 16가지 국적이탈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어렵게 구제를 받는 경우라도 복잡한 절차를 다 거치고 나면 이미 1년 이상의 기간이 경과하여 정계나 공직 진출은 아예 포기해야 할 상황이 계속되리라는 점은 여전히 큰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아쉬운 것은 개정안이 법사소위를 통과하기 전에 입법토론회를 개최하여 재외동포의 현실 파악과 해외 전문가 의견 그리고 멀베이의 목소리를 경청했어야 했다. 병역기피에 분노하는 국민정서가 두려워서 또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와 무관한 멀베이의 권리 침해와 피해에 대해 눈 감는 대한민국의 입법 및 언론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법은 언제라도 개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홍준표 법의 일부를 개정하는데 17년 걸렸는데 앞으로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지속적이고 새로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멀베이의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국적자동상실제를 부활시키도록 하여야겠다.
<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