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프린스턴 대학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하자 한국의 주요신문들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라며 허 교수를 영웅시하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허 교수의 병역 문제를 거론하며 유승준과 비교하는 기사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병역문제와는 무관한 재외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을 향한 비뚤어진 잣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허준이 교수와 유승준 그리고 재미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다른 것은 허 교수는 미국에서 출생하였지만 한국에서 성장하였고, 유승준은 한국에서 출생하고 이민을 와서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는 점이다.
허 교수는 부모가 미국 유학 중 출생했지만 한국에서 대학교까지 다녔고, 유승준은 중학교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영주권을 받았다. 허 교수는 만 18세 전에 한국 국적이탈을 하여 병역을 피했고, 유승준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되어 병역을 피할 수 있었다.
반면에 재미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승준처럼 한국국적이 자동상실도 되지 않고, 허준이 교수처럼 국적이탈을 쉽게 할 수도 없다. 아직도 국적이탈의 의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한인 2세가 대부분이다. 허준이 교수와 유승준은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미국 국적을 선택하여 병역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지만 현재 처한 상황은 극과 극이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후 금의환향하였으나, 유승준은 헌법 위에 있다는 ‘국민정서법’ 위반으로 20년간 입국 금지를 당하고 있다. 재미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국적 이탈 의무를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한국 여권 사용 의무 또는 징집에 대한 우려로 아무런 죄 없이 유승준 처럼 사실상의 입국 금지를 당하고 있다.
만약 허 교수가 지금 국적이탈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행법상 그는 국적이탈을 할 수 없다. 그동안 유명인과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기피 문제로 인하여 수차례 관계법령이 개정되면서 국적이탈이 점점 어려워졌다. 현행법에 의하면 비록 미국에서 출생했다 하더라도 자녀 출생 전후로 부 또는 모가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신청 또는 취득하였거나 국적이탈신고 전 17년 동안 계속 미국에 거주하지 않았으면 ‘영주할 의사없이’ 해외에서 출생한 자녀로 간주되어 국적이탈이 불가능하다.
이는 국적이탈 대상을 해외이민자 가정에서 출생한 자로 제한하고자 하는 취지로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허 교수가 만약 현행법의 적용을 받았다면 필즈상 수상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국제 결혼이나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이다. 미국에 생활기반을 둔 한인 2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의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2005년 소위 홍준표법이 통과되면서 한국에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는 선천적 복수국적자 남성들도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으면 병역을 마치지 않는 한 만 37세까지 한국 국적이탈이 불가능해졌다.
이는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들에게 잠재적 병역 기피자라는 꼬리표와 함께 한국 입국 금지령을 내린 것과 다름없다. 이 조항은 2020년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체입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현재 나와있는 국회 개정안은 까다로운 허가 요건으로 인하여 한인 2세의 미 정계 및 공직 진출의 걸림돌의 제거가 아닌 유지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허준이 교수는 국적이탈을 하였어도 재외동포 비자(F-4)를 41세까지 받을 수 없어 한국 장기 체류에 제약을 받게 된다. 몇 년 전에는 ‘反 유승준 정서’에 편승하여 재외동포 비자 발급을 45세까지 제한하는 법안이 상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특정인에 대한 반감과 실효성 없는 땜빵식 개정으로 인하여 국적법은 누더기가 되어 가고 있다.
이는 형평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적이며 글로벌 인재 등용을 저해하는 일로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2조 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감정 보다는 객관성과 타당성에 기반한 국적법 및 재외동포법의 개정이 절실하다.
<전종준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