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와 저녁식사를 했다. 한 인권 단체를 통해 사람 살리는 귀한 사역을 하시는 목사이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감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을 구해 주었는데, 정작 감사를 표한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목사는 계속해서 “감사를 받기는 커녕, 심지어는 멱살까지 잡히면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 목사왈, “본인은 도와준 사람으로써, 그들에게 감사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드링크제라도 하나 가지고 와서 감사의 인사를하라”고 가르친단다. 이는, 자신이 꼭 드링크제 하나를 얻어 먹고 싶어서도 아니고 또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생색을 내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감사를 할줄 알아야 축복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란다. 즉, 그들이 더많은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감사하는 법을 역설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감사를 너무 쉽게 잊어 버리고 사는것 같다. 어느 의사는 자신의 집을 수리할것이 있을때는 반드시 지금 치료중인 환자중에서 집수리를 부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완치된 사람에게 부탁하면, 속히 오지도 않을 뿐더러, 전화연락도 없단다. 그러나 지금 치료중인 사람은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리해 준단다.
과연 우리의 감사는 결국 계산적인 이해 관계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아쉬울땐 감사하는척 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감사한 사람마저 외면하는것이 우리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이 병자 10명을 고쳐 주었는데, 오직 한명만 돌아와서 감사를 표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색한 감사는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것 인가!
추석이다. 추석다운 추석은 바로 감사가 아닌가 싶다. 추석에 즈음하여, 감사는 남을 축복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는 자신이 먼저 축복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