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경, 초대 재외동포청장이 뉴욕, 워싱턴 그리고 LA를 방문했다. 처음으로 생긴 재외동포청인 만큼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물거품이었고 적지 않은 실망감이 내 마음속에 일기 시작했다. 초대 재외동포청장과 전직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에 대한 법적 태도의 견해는 다르지 않았다. 닮은 꼴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한 법적 전문성 결여이다. 전직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한인 2세가 모국 연수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국적법 때문에 못하는 것이란 사실을 몰랐다. 이에 반해 초대 재외동포청장은 국적법 개정없이도 예외조항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나 모가 이혼이나 사망했을 경우에는 출생 신고 자체가 힘들어 국적이탈 허가 신청 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 이유로 현재 국적법 시행령의 위헌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2005년 홍준표 법에 의해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으면 병역의무가 부과되고 병역을 마치지 않는 한 38세까지 국적이탈이 불가능하다. 이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의 결과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는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의 국적이탈허가 불허 통지서를 받는 한인 2세가 늘어나고 있다. 불허 사유는 국적이탈 허가시 고려사항 요건 미충족, 즉 복수국적으로 인하여 외국에서의 직업선택에 상당한 제한이 있거나 이에 준하는 불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고 있다.
청장이 이런 법적 전개를 알았다면, 이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으면 그 배경과 이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과 실재를 물어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내심 나에게 문의라도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것 또한 역시였다.
둘째, 피해의 심각성에 대한 현지 사정의 체감이 없다. ‘병원에 가야 환자가 많은 줄 안다’ 했듯이, 한인 차세대는 공직, 사직, 그리고 정계 진출 시 복수국적 여부를 묻는 신원조회에서 당장 답변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피해는 급박하고 심각한데 한국에서는 현지의 사정을 체감하지 못하는 불감증이 문제이다. 잘못된 법을 만들어 놓고서는 ‘나 몰라라식’ 법적 무책임 내지는 무관심은 매우 비애국적이며, 아직도 그 기본틀을 바꾸지 못하는 큰 이유이다.
현행법은 한인 2세를 ‘거짓의 함정’으로 빠트리기도 한다. 부모를 통해 복수국적임을 들은 듯하나 불이익이 두려워 복수국적을 부인하기도 한다.
여지껏 복수국적을 몰랐던 연방정부 요직이나 정계에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이나 여성들은 지금 복수국적임을 알아도 모른 척 가슴만 쓸면서 하루속히 복수국적의 굴레로 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18년된 악법이 한인 차세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셋째, 한국 여론이 개선돼야 근본해결 된다는 것은 핑계이다. 국민정서 또는 한국 여론으로 장벽 삼아 숨는 것도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국민정서나 여론도 잘못된 여론몰이나 홍보로 이슈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정부의 잘못인데 언제까지 이 이유를 달 것인가?
일전에 뉴욕의 국가유공자 부인 백정순씨의 기사가 한국의 모 일간지에 실렸을 때, 이해하고 분노하며 고쳐야 한다는 수많은 댓글은 어떤 여론이고 국민정서란 말인가? 개정법이 속히 진행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정치권에서는 병역에 대한 강박감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는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일수록, 재외동포청장은 재외동포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높여 병역과 무관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해결책으로 국적자동상실제 도입의 정당성을 국회와 정부, 그리고 국민에게 건의하고 홍보했어야 한다. 재외동포청은 진정 동포를 위한 청인가?
해외동포보다는 그 자리를 만들어 준 국내 여론에 더 관심이 많은 재외동포청 속에 아쉽게도 재외동포는 없다.
필자가 지난 10년 넘게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법적 개선을 노력하고 있으나 정권이 바뀌어도 잘못된 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찌나 똑같은지! 그러나 나는 믿는다. 변한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