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창피해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씨름하고 있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의 성화로 억지로 다녔던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 교회 다닌 사람은 반드시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법이다”라고 했던 말씀이 또렷이 기억났다.
“하나님, 저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그동안 하나님은 없다며 유아독존에 빠져 기댈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고 잘난 척하고 큰소리쳤던 자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예수님 사진을 골방에 걸어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공부하기 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매일 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면 다시 해낼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1년 후 다시 본 예비고사는 작년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다행히 제2차 지망인 지방대 커트라인에 간신히 통과됐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난 전정구 아저씨처럼 멋진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서울 상대에 입학했고 나는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대학’(서울상대)에 가게 되었다.
1978년 2월, 고모가 사는 대구에 위치한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 복지행정학과에 가기로 결정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대구로 향했다. 대학 입학식 날, 의례적인 행사에 자리를 채우러 간다는 생각으로 행사장에 갔다. 기대도 흥분도 없이 참석한 입학식장에 무료하게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내 머리를 뒤흔들었다. 단상을 바라보니 키가 자그마한 백발의 총장님 목소리였다. 반은 연설이고 반은 야단을 치듯 말씀을 하고 계셨다.
“남이 안 하는 거 해 봐!”
갑자기 머리에 벼락을 맞는 듯, “남이 안 하는 거 해 봐”가 계속 울려 퍼지더니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난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 말씀은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분이 바로 대구대학교 설립자 이영식 목사님이셨다. “그래, 남이 안 하는 걸 해 보자.”
행정학과에 입학해 1학년 첫 학기에 법 과목을 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혼자 공부하여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었다. 미리 공부했던 법 공부가 효자 노릇을 할 줄이야. 관심 있는 과목들이라 논리적 이해도 빨랐고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비로소 대학에 와서 난 날개를 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움츠리기만 했던 나의 날개가 활짝 펴지고 있었다.
첫 학기엔 과 수석을 해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열심히만 공부하면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해 봤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너 참 잘 한다’는 칭찬인 것 같다. 부족한 나를 다시 세워 할 수 있다고 가르쳐준 학교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대학에 법학과가 없어 편입을 해야 했다. 단국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편입허가서를 받아들고 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내가 할 수 없었던 공부였다. 이제 하나님과 동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리=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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