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두란노 아버지 학교에 입교했었다. 그런데 아버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그 옛날 개 훈련 학교에 갔었던 생각이 문든 들었다.
당시 나는 개를 훈련시켜 두면 내 명령을 잘 따르게 돼 여러모로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해 개 훈련소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개 훈련학교의 훈련 방법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개를 훈련 시키기 전에 먼저 개 주인을 훈련 시키는 것이 아닌가! 개를 알아야 개를 훈련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개를 때리고 윽박지르기 보다는 칭찬하고 대접해 줘야 주인을 잘 따른다는 것을 가르쳤다.
오랫동안 개를 키우면서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런 후 비로서 개를 훈련 시키기 시작했다.
아버지 학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 학교에서는 자네에게 고함치거나 때리기 보다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버지가 자녀를 대접해 주어야 아버지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역설적 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된 셈이다.
먼저,아버지 하면 무서운 아버지, 어려운 아버지,무뚝뚝한 아버지 그리고 먼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속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는 고사하고,얼굴 한번 보기조차 힘든 아버지, 밖에서는 자상하면서 집에만 오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아버지,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르기에 5분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아버지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아버지상은 당연히 그런 것으로 치부됐다.
일 문화,체면문화,폭력 문화,음주 문화,레저 문화,그리고 권위 주의 문화에 찌든 아버지의 전통을 그 누가 감히 깨려 했겠는가.
그런 까닭에,바쁜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요,생물학적 아버지는 남자에 불과하다는 그 간단한 사실 조차도 우리 아버지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증오가지 했건만,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아버지와 또같은 아버지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모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런것도 부전자전인가.
이 아픔은 우리 자신에서 끝내고, 더이상 대를 이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힘든 문제이다.그러나 자녀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것이 우리 자신이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 학교에서 들은 일화다.
일 밖에 모르던 어떤 아버지가 하루는 아들과 영화구경을 다녀왔는데 얼마 후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그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이라는게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큰 일 보다는 자녀들을 헤아리는 작은 일 속에서 아버지를 더 크게 본다는 사실을 때달았다는 것이다.
가정을 위한다는 핑계로 오히려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무지에서 이젠느 해방되어야 할 때가 왔다.아버지 학교에서 돌아본 우리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이제부터라도 군림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섬기는 아버지 상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생각컨대,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면, 아버지학은 인생의 필수 과목이 아닌가 싶다.
모두들 아버지학을 배워 진정학 아버지로 거듭나자.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