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안보 관련 직업 가진 미국인 아버지
▶ 아들 국적 이탈 앞두고 소송…“한국 국적법 따르면 내 직위 위태로워져”
14일 한국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접수시킨 후 브라이언 헌트(가운데)씨가 법률 대리인인 전종준 변호사(오른쪽), 임국희 변호사와 함께 차후 대응방안을 의논하고 있다.
버지니아에 거주 중인 한인 2세의 미국인 아버지 브라이언 헌트(가명)씨가 14일, 한국에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한국 국적법 시행규칙 제 12조 제2항 제1호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2022헌마185)을 제기했다. 이번 위헌 소송은 미국인 아버지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이다.
한인여성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헌트씨는 “아내의 주변에서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 이탈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알아보니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에 해당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현재 미국 국가기밀정보를 다루는 직위에 있는 자신이 “한국의 국적법에 따라 혼인신고와 아들의 출생신고를 할 경우 국가안보 관련 규정 위반으로 직장에서 위치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돼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헌터씨처럼 국제결혼한 가정의 자녀가 국적이탈을 하려면 부모가 미국에서의 결혼사실을 한국에 혼인신고한 후 자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고, 출생신고시 부모의 개인 신상 정보를 전부 기록하고 한국 정부가 영구보존한다. 그런 뒤 자녀의 국적이탈 신고가 가능하게 돼 있다.
이번 헌법소원을 포함하여 그동안 7차에 걸친 국적법 헌법소원을 주도해온 전종준 변호사(워싱턴 로펌 대표)는 “한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도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침해를 당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로 정립되어 있는 만큼 소송은 단지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은 소송 제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인 아버지에게 개인 신상정보 제공 및 등록을 강요하는 위헌적인 국적법 시행규칙은 한국인과 결혼한 미국인 모두에게 적용돼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외교문제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5차 헌법소원의 결과로 국적이탈신고 관련 국적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2020년에 내려졌고 해당조항은 오는 9월 30일까지 개정시한이 정해졌다. 따라서 이번 헌법소원을 계기로 국회에서 국적법 개정 심의 과정 중 국제화된 새로운 가족 관계 추세를 반영하는 올바른 개정법이 하루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임국희 변호사는 “미국인 아버지가 한국의 국적법과 주민등록 관련법을 따를 경우 자신의 직업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심각한 기본권 침해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므로, 헌법재판소의 긴급한 권리구제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기본권 침해를 유발하는 이 조항은 조속히 위헌판결을 받아 반드시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달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혼혈 한인인 저스틴(가명) 군은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로 미 해군 핵 담당 부서 발령 취소 위기에 처했으며, 지난해 11월에도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문모씨가 미 공군 장교로 주한미군 발령을 받았으나, 공군 측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이유로 발령을 취소하는 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미 전역에서 한인 2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여된 이중국적이 문제가 돼 연방 공무원이나 사관학교, 군 요직 등 신원조회가 필요한 공직 진출에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국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또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상 최초로 제기된 미국인 아버지의 헌법소원에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