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이 대화의 시작
아내가 동네 사람들과 꽤 친하게 지내는 바람에 난 동네 모임에 자주 간다.
모두가 미국인인 모임에 가려면 가기 전 음식 먹을 걱정부터 한다. 토종 한국인인
나는 아직도 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모임에 가기 전에 조금 먹던가 아님 쫄쫄이 굶고와
라면으로 저녁을 떼우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을 가진 이웃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저녁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냥 갔더니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음식도 먹지 않고 동네 사람들 이야기 하는 것만 듣고 있었다. 먹지도 않고 대화를 듣기만 하는 나에게 변호사인 옆집 캐티가 “페이스북에서 내 육군 장교시절 사진을 봤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말을 걸어 주었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노인이 “내가 1957년도에 미 공군으로 한국에 갔었다”며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의 옆에 있는 처남되는 노인은 미 해군으로 1958년도에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고 했다. 노인이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한국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는 미 육군 밑에 공군이 속해 있었는데 나중에 공군이 따로 독립을 해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초기 공군 병사라고 자랑하면서 군사분계선 지역의 땅밑에 통신 케이블이 있는데 북한군들이 그 케이블에 쇠말뚝을 박아서 통신을 교란하여 그 쇠말뚝을 기계로 찾아내서 뽑아내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마치 엊그제 한국을 다녀온 모양 추억을 되새기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오징어가 참 맛있었다”고 했다. 오징어는 미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데 오징어가 맛있었다는 그는 마치 나를 배려하는 듯 느껴졌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나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그리 활발하게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 아니다. 더구나 미국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서로가 편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내 전공인 법 이야기 외에는 별로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러던 중,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한국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어 준 노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의 공통점을 찾아서 나에게 먼저 대화를 걸어준 것이다. 대화의 상대자가 되어 준 것에 감사해 하면서 나는 그 노인에게 “한국을 도와 주어서 오늘날 한국이 크게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국 사람을 대신해서 감사해 하는 나의 말에 그는 큰 감동을 받으면서 오히려 나에게 더 감사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희생해 준 한국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즐거움인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만난 75세 전후의 미국 노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를 하였다고 한다. 내 아내의 오빠도 1953년도에 한국에서 군대 생활을 하였다.
이제 한류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잘 알고 있으니 내가 먼저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대화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냥 앉아 있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먼저 손을 내밀면서 이야기를 걸어주는 배려하는 마음이 대화의 시작임을 깨닫게 한 파티였다. 나의 관심거리보다는 상대방의 관심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란 것을…
그 노인이 먼저 가면서 다시 나를 찾아와서 오늘 대화가 참 좋았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를 하였다. 실은 내가 더 감사하였는데 그 노인은 그의 말을 들어 준 것이 감사한 듯하였다.
예상하지 않았던 풍족한 대화를 나누고 왔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여전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식성은 쉽게 못 바꿀 것 같다. 그러나 남과 나누는 심성은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곧 나를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