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졌더라도 이중국적자일 경우 가족과 함께 실제 외국에 살지 않는다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또 병역면제의 기준은,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실제로 외국에 거주했느냐’가 돼야 한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유남석)는 20일 미국 시민권자인 박모씨(29)가 서울지방병무청장을 상대로 낸 현역병 입영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에서 병역 면제사유로 들고 있는 ‘국외에서 가족과 같이 영주권을 얻은 사람’은 ‘가족과 같이 외국에 체류하면서 영주권을 얻은 사람’으로 봐야 한다”며 “외국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권을 얻었고, 국내에 있는 부모의 도움으로 유학생활을 한 박씨는 면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가족과 함께 실제로 외국에 체재하고, 거주한 사실이 있느냐가 병역면제의 기준이며 영주권은 그 표지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유학 중이던 1975년 미국에서 태어난 박씨는 이듬해 한국에 들어와 생활했으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다. 박씨는 결혼준비를 위해 지난해 2월 한국에 들어왔다 출국금지 조처를 당했으며 신체검사를 받고 현역입영 처분을 받았다.
이번 판결은 최근 한국에서 번지고 있는 부유층의 ‘원정출산’ 붐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4월 메릴랜드 거주 시민권자인 스티브 유씨(34) 소송 케이스에서처럼 실제 국내에 영주할 목적으로 귀국한 사람에 해당하느냐 하는 점과 실제 가족과 함께 외국에 거주해왔느냐를 병역면제의 중요 잣대로 보는 법원의 기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주동 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온 유씨는 한 외국계 회사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병역면제 신청을 냈으나 이중국적을 이유로 취소되고 지난해 징집통지서를 받자 서울지방병무청장을 상대로 병역면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는 시민권자이긴 하나 병역면제 대상이 되는 영주권자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고 영주할 목적으로 귀국한 사람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편 미 영주권 취득자에 부여해오던 병역면제 제도는 조만간 폐지되고 입영연기 제도로 대체된다.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병역법 개정안에 따르면 종전에는 병역 의무자가 국외에서 가족과 같이 영주권을 취득했을 때 병역 면제를 처분했으나 앞으로는 입영 연기 처분으로 바꿈으로써 병역 면제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했다.
이에따라 종전에는 병역 의무자가 국외에서 가족과 같이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병역면제 처분을 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입영 연기 처분을 해야한다.
그러나 이 시행령이 언제부터 적용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종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