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수 없다

최근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의 불명예스러운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헌법은 최상의 법이다. 마치 붕어빵 틀이 삐뚤어지면 삐뚤어진 붕어빵이 나오듯, 헌법의 틀이 삐뚤어지면 불행한 대통령사가 나오게 된다. 한국은 70년간 9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으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기본틀이 한국식 민주주의란 이름 하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즉, ‘법의 지배’가 아니라 ‘사람의 지배’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제왕적 대통령제가 불행한 대통령사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로잡기 위한 대안을 미국의 헌법을 참고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얼마 전 자문을 구해온 한국 정치인에게도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미국은 1787년도에 헌법을 제정한 후 20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기본 틀에 변함이 없는 권력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이 이토록 튼튼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헌법상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통치구조에 있다. 이상적인 삼권분립은,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에 대한 균등한 권한 분배보다는, 삼권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의미에 중점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사를 보더라도 삼권 중에서 행정부가 독주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히틀러와 스탈린 그리고 독재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어떻게 하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미국은 사법부에 위헌법률심사권, 즉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법부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하여 ‘사법부 우월주의’라고 보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은 제왕적 대통령를 막기 위해 ‘입법부 우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을 집행하며, 사법부는 법을 해석한다. 따라서 입법권은 의회에만 있고, 대통령이 속해 있는 행정부에는 입법권이 없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은 물론,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은 당연히 없다.

또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인 탄핵소추권과 결정권은 각각 의회의 하원과 상원에 있고, 탄핵심판 시 재판장은 미 연방 대법원장이 된다. 240년 미국의 헌정사에서 탄핵된 대통령이 없었던 것은, 포퓰리즘에 움직이지 않는 정치적 연륜이 있는 100명의 상원의원들이 국익을 지향하는 제도를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아무리 사법부가 위헌법률심사권을 통해 헌법에 위반된 법률이나 대통령의 법률행위를 무효화 시킬 수 있다고 할지라도,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의회에 있기 때문에 사법부 우월주의 보다는 입법부 우월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입법부 우월주의로써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경우, 입법부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탄핵심판권과 사법부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인 위헌법률심판권과 정당해산심판권이 헌법재판소에 귀속되어 있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사권분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안 맞으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되고 만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를 없애고, 탄핵심판권은 입법부로, 그리고 위헌법률 심사권과 정당해산 심판권은 사법부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굳이 헌법재판소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미국의 연방대법원처럼 위헌법률 심사권만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이 경우 미 연방 대법원 판사의 임기가 종신제이듯이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종신제로 하여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민주적인 ‘삼권분립의 원칙’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의 도입만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이다. 따라서 개헌의 핵심은 통치구조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번 헌법개헌 내용에는 이런 내용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외치는 대통령에게, 내치는 총리에게 맡기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하는데, 이 또한 대통령제의 기본틀에서 벗어난 기형적 대통령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거절된 정의이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대로, 정의로운 헌법의 개정이 늦어질수록, 정의는 거절될 것이다. 거절된 정의에는 보수나 진보가 따로 없다. 이제 불행한 대통령사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통령제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전종준 변호사, VA>

출처: 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80501/1176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