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국정감사와 이중국적의 심각성

병원에 가봐야 아픈 사람 많은 줄 안다. 그렇듯, 미국에 와 봐야 한국의 선천적 복수국적법으로 고통당하는 한인 2세가 얼마나 많은 지를 알게 된다.

법무부가 주관한 해외동포 설문조사 연구 책임자가 워싱턴까지 나를 찾아 왔다. 10월 말에 온 이번 설문조사단은 법무부가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의 개선을 위한 일환으로 미주 한인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에 대한 설문조사를 LA, 뉴욕, 뉴저지 등에서 실시한 것이었다. 뉴욕을 경유해서 온 책임자는 막상 미국이란 병원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해 제대로 아는 미주 동포나 한인 단체가 거의 없어 설문조사에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나는 책임자에게 5차 헌법소원까지의 내력과 한인 2세들의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의 현주소를 법적, 그리고 사실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약 3시간동안의 자문을 듣고 난 후, 책임자는 “심각하네요” 라는 말을 남기고 나의 사무실을 떠났다.

그럼 그 책임자는 왜 ‘심각하다’는 말을 했을까? 아마 한국의 국회나 법무부는 선천적 복수국적의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탁상공론만 하고 있고, 또한 이로 인해 법의 올바른 개정이 지연되고 있는 현실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2018년 10월, 워싱턴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선천적 복수국적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었다. 국정감사 중 모 의원은 주미 대사관이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인해 한인 2세가 받는 피해 사례를 알고 있냐고 질타하였다. 어떤 피해 사례가 있는지 알려주어야 바른 입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며 피해 사례를 보고하라고 주문하였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위헌성을 바로 잡고자 지난 5년에 걸쳐서 5차 헌법소원을 한 이래 처음으로 진전을 보이는 듯 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5차 헌법소원의 결정시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하여 안타깝기도 했다. 더우기 피해 사례는 헌법소원의 자료로 이미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기에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헌법소원 내용을 읽어보았더라면 앞으로 입법의 방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국정감사 중 모 의원은 선천적 복수국적의 문제는 미국에만 국한된 이슈라고 언급하였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선천적 복수국적의 피해는 전세계 한인 2, 3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거 1997년 국적법 개정 당시 한국 정부에서는 국적유보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논의가 있었으나, 일본 거주 동포들의 반발로 좌절된 바 있다. 

그러나 홍준표법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던 재일동포 한인 2세에게도 선천적 복수국적제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가 일본교수에 의해 논문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2세 들이 미국 무비자 방문 신청서를 기입할 때, 질문서 중에 “이중국적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거짓으로 표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표시하면 한국국적도 있다고 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의 증거가 남아서 미국 입국이나 미국 진출에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이중국적이 나타날 경우, 일본의 공직이나 정계 진출에 장애가 되는 것은 미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법무부의 해외동포 설문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이종걸 의원은 11월 초 LA 에서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자에게 개별적 심사를 통해 국적 포기를 승인하는 임시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적유보제는 한국정부나 정치권 그리고 국민정서를 고려하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외국에 생활근거를 둔 한인 2세, 3세는 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 호적에도 없고, 더우기 한국에 갈 의사도 전혀 없는 2세들이다. 한국을 자주 방문한 적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은 적도 없는 자들이다. 아직도 모든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유승준처럼 한국행을 추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피해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선천적 복수국적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국민정서’ 운운하는 것은 변명아닌 변명에 불과하다. 

오늘도 미국 정보 기관이나 공직에 진출하는 한인 2세가 신원조회서 질문 중 “이중국적 소유자인가요?”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되냐며 나에게 물을 때는 “한국 영사관에 문의해 보세요”란 말 밖엔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생색내기식 임시법은 오히려 올바른 입법의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인 2세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며, ‘심각’하기 때문이다. 

<전종준 변호사, VA>

<출처: http://dc.koreatimes.com/article/20181211/1219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