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유보제 또는 국적 당연 상실제로 개정돼야”

▶ 선천적 복수국적 바로잡기 외로운 행군 5년째 전종준 변호사

전종준 변호사가 선천적 복수국적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천적 복수국적이란 출생을 통해 한국 국적과 출생지인 외국 국적을 함께 보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출생했을 경우 기존에는 출생 당시 아버지가 한국국민인 경우에 한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으나(부계혈통주의), 1998년 6월 14일 이후부터는 출생 당시 부모 중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한국 국민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부모양계혈통주의)는 것으로 개정됐다.

따라서 외국인과 결혼을 한 한국여성의 자녀도 포함되게 됐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250여만명 미주 한인사회의 한인 2세 또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이 한국계이면, 공무원 등 공직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 본인이 선천적 복수국적자 임을 전혀 모르는 한인 2세들이 미 주류사회 진출시 신분확인란에 잘못 기재했다가 위증 등으로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해 5년 전부터 한국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을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워싱턴 로펌 대표)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원정출산이나 병역기피와는 무관한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 국적이탈 의무를 부과하여 남자의 경우 만 18세가 되는 3월 31일까지 이탈하지 않을 경우 38세까지 국적이탈을 못하게 하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의 해외 태생 한인 2세들은 한국의 법을 알지도 못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적도 없다.
현재 복수국적으로 인해 미국 내 공직 진출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은 약 20만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그 숫자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사관학교나 미군 입대 혹은 정계나 공무원 진출을 위해서는 신원 조회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 중에는 복수국적 여부에 관한 질문도 있어 자칫하면 위증 내지 허위사실진술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불이익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손해고 한인 2세에게도 손해이기에 문제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5년 전부터 외로운 투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의 내용은 무엇이며 현재 상황은?
▲미국에서 출생 당시 아버지가 미국인이었고 한국인 어머니가 영주권자여서 1998년 변경된 부모양계혈통주의에 의해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 1999년생 남자 크리스토퍼 샨 멜베이 주니어를 대리하여 2016년 10월 5차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했다. 지난 4차 헌법소원에서 공직진출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밝힌 의견에 대한 반박으로 미국에서의 공직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여 선출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군인, 경찰관, 소방관, 국·공립학교 교사 등 다양한 공적 직업군이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시 한 번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현재 5차 헌법소원심판은 사전심사를 통과하고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그간의 진행과정은?
서울대학교 외국인 장학생에 합격하였던 다니엘 김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임이 밝혀져서 입학이 취소되고 한국행을 포기하게 된 일을 계기로 2013년 9월 1차 헌법소원을 진행했으나, ‘청구기간이 지났다’라는 절차상의 이유만으로 각하되었다. 다음에는 변호사인 나도 한국의 국적법을 몰랐으니 대부분의 해외동포도 몰랐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나의 큰아들 벤자민 전을 청구인으로 하여 2차 헌법소원을 진행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또 각하되었다. 이후 방향을 바꾸어서 미국 공직 진출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2014년 9월 폴 사를 청구인으로 4차 헌법소원을 했으나, 공직 진출은 “극히 우연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라는 등의 이유로 합헌 결정(5대4)이 내려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번에는 한국의 부정적 국민정서를 고려, 혼혈인인 멜베이를 청구인으로 제 5차 헌법소원을 2016년 내게 됐다.

– 다른 국가는 어떤 방법을 채택하고 있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버지 나라인 케냐는 ‘국적유보제’를 통해 복수국적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케냐 법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라 할지라도 케냐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케냐 국적이 자동적으로 말소돼 복수국적자의 지위가 소멸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제 덕분에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복수국적으로 인한 문제없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국적유보제를 채택, 복수국적자의 발생을 감소시키고 복수국적자들을 더욱 명확히 파악, 관리하고 있다.

–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은
▲2010년 개정 국적법에 의해 한국 국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한국 국적이 자동으로 상실되는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2세 남자나 여자 모두 한국 국적 선택 불이행 시 한국 국적을 계속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까지도 미 공직 진출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런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한 한국 국적이 자동 말소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국적유보제’나 ‘국적당연상실제도’의 부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조부모나 부모에 의해 한국 호적에 올라있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국적이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

– 현재 미주 한인사회가 탄원서 2만장을 청와대 전달 등에 나서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청와대나 국회에 탄원서 전달은 문제의식의 제기라는 점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탄원서를 전달한 후 법무부에서 ‘부정적 국민정서’를 들어 난색을 표한 것에 비추어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국적이탈의 기회를 달라는 탄원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며,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절차를 이행하기란 멀베이 아버지나 멀베이와 같이 한국어나 한국법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출생신고를 먼저하고 이탈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오히려 이중국적의 증거를 남기게 되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 그동안의 활동 중 가장 보람있던 일과 힘들었던 점은
▲유승준은 한국 태생이며, 한국 호적에 있으며, 한국에서의 영리활동을 꾀한 반면, 대부분의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외국 태생이며, 한국 호적에 없고, 한국 거주 의사나 한국에서의 영리활동 의사가 전혀 없다. 이들과 유승준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국적법이고, 정부 관계자가 말하는 ‘부정적 국민정서’의 뿌리다. 4차 헌법소원이 5대4로 기각된 뒤, 한국의 ‘부정적 국민정서’라는 변명의 벽을 넘을 수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찾던 혼혈인 청구인을 찾지 못하고 고민할 때, 멜베이 군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로 헌법소원을 청구해 달라고 요청, 이에 다시 용기를 얻어 한국의 부정적 국민정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둔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격려와 응원을 받을 때 힘들었던 지난 5년간의 긴 싸움 속에서도 큰 보람을 느낀다.

– 앞으로의 전개 방향과 계획?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청원 웹사이트 Yeschange.org를 개설했다. 웹 사이트를 통해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5차 헌법소원에서 위헌 판단을 받고, 이후 지속적인 서명운동을 통해 ‘국적유보제’ 혹은 ‘국적당연상실제도’가 한국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힘쓸 생각이다. 뛰어난 ‘한인 2세들의 미 주류사회 진출’이 결국은 한미 양국 발전과 양국 국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영희 기자>

 

출처: http://dc.koreatimes.com/article/20180610/1183952